사순시기, 고난의 신비
사순시기가 시작된 지 2주일이 지났고 제3주일을 앞두고 있다.
강론 편집하다 보니 시기가 벌써 그러한데,
이번 사순에 나는 어떤 실천목록도 만들지 않았다.
아마 더 이상 내가 실천할 고행거리가 없을 만큼 생활에 사치 부린 일 하나 없고,
게으른 적도 없으며, 낭비해서 절제가 필요한 일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사를 앞둔 지금, 넉넉치 않은 형편이라 금전 문제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오고, 드디어 이사할 날이 다가오는데,
빚더미 때문에 신용등급이 단번에 4등급으로 내려간 걸 보고는
이 모든 선택이 나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올라왔다.
점점 예민해진 나는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일이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상태가 되면 초조해져서 괜히 언성이 높아지고,
성도의 하나되지 못한 제각각 태도를 여유 있게 넘기지 못하고 마음 상하기도 했다.
빚만 아니었으면 당장 사역부터 그만두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빚 없이 생활하기 어려운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사순 제3주일 복음 말씀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두고 주인이 베어 버리라고 하자 종이 이렇게 말한 대목에 잠기게 되었다.
"주님, 올해는 일단 놔 두십시오. 제가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면 내년에는 열매 맺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때 베시면 좋겠습니다."(누가, 루카 13:8-9)
사람들에 대해 일단 놔 두라는 인내와 자비, 열심을 보니
서서히 내가 당하는 내적 고난들을 조금 더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올해는 일단 지내 보자, 올해까지는 참아 보자, 올해까지는 계속해 보자...
이사 준비하면서, 아버지께 부담이나 걱정을 안겨 드리고 싶지 않아
동생들, 친구, 지인들 통해서 도움 좀 받고 혼자서 다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상황이 서럽고 혼자서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게 너무 힘들어 괴로워지기도 했다.
아버지 옆에 있으면 비바람도 막을 수 있고 춥지도 덥지도 않는 집에서 돈 걱정 안 하고 편히 살 수 있는데...
하지만 이제는 내가 독립해서 아버지의 노년을 대비해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나부터 바로 세워 보려고 했다.
그런 내게 필요한 건 더 이상의 육체적 고행도 아니라
알게 모르게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에서 홑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그 서러움을 날려 버리는 일이었다.
상황들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인내와 자비의 훈련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영문도 없이 휘둘리거나 당하기만 한다고 느끼는 것과의 차이는 크다.
무의미하게 시간과 체력을 착취당하기만 하는 불쾌감과 저항이 줄어들고,
죽음의 힘에서 더 초연하고 편안하고 담대하게 가는 신비가 열렸다.
감사하게도 사순시기에 여전히 봄바람이 불어 오고, 따스한 햇살에 꽃들이 피어난다.
감사하게도 나는 여전히 그 사실에 눈물 맺힌다.
사람들이 괴롭게 하고, 내 체면과 명예를 구기는 게 싫어도,
오늘도 하느님은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며 한 해를 기다리자는 인내와 자비로 여기 계시다.
한 해가 어디 1년뿐일까. 당신이 그러하신데 내가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보다 먼저 모욕받으신,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심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