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등려군과 장국영을 그리며 - 임청하의 책 <운거운래>(雲去雲來, 2014) 중에서

Shaoli 2019. 4. 11. 14:03

 

홍콩 팟캐스트 '경열독'(輕閱讀, 가볍게 읽다)에서 들은 임청하의 책 이야기다.

환갑을 맞은 임청하가 2014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운거운래>(雲去雲來)를 냈다.

그리고 일부는 직접 녹음했다.

이 방송에서는 그녀가 등려군과 장국영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주제로 다뤘고,

임청하가 등려군을 만났던 이야기,

이후에 등려군이 죽은 소식을 듣고선 둘 사이의 우정이 이렇게 끝날 수 없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임청하는 등려군이 죽은 뒤엔 꿈에서 자주 등려군을 만났다고 했다.

등려군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고,

단지 이상한 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등려군이 하늘나라에 갔다고 여겼지만,

자신만이 등려군이 아직 세상에 있다는 걸 알았단다.

「奇妙的是,在夢裡,世人都以為她去了天國,唯獨我知道,她還在人間。」

잠깐의 침묵 뒤에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달이 제 마음이에요)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건 꿈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있어. 나도 죽더라도 이 세상에 있을거야."라며

아득한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시간들과 떠나간 사람들을 한데 만난 듯한 감동이 밀려와 눈물 흘렸다.

자살한 장국영에 대한 애틋함과 나의 따듯했던 유년 시절 안에 잠기며 은은한 스탠드 조명 아래서 스르르 잠들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난 뒤에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기분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지난밤의 이 감동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누고도 싶었다.

그러다 동료가 출근해서 인사하고 대화하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번뜩 깨어났다.

문득 한 아름 품에 안고 있던 그리움이 비눗방울 터지듯 사라져 버리고,

동시에 지금 사랑해야 할 순간들과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걸 자각했다.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소통하는 세계로 돌아온 순간,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 나를 누군가 현실에 다시 데려다 놓은 것 같았지만,

예전이었다면 떠나간 그리움을 영영 못 볼 엄마 보내듯 아쉬워하며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과거의 그리움도, 현실의 살아 있음도, 이곳이 낯선 땅이어도 나에게 주어진 일상이 고맙기만 했다.

 

"아, 여기가 내가 살아야 할 곳이구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그리고 또 난데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동료 몰래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