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거기 아무 일도 없었다
Shaoli
2019. 4. 15. 11:11
어린 시절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답지 못하게 만든
무겁고도 어두운 일들이.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꺼내 보여 주신 가족 사진 속 나는
그저 유쾌하고 발랄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장난스레 웃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오히려 옆에 있는 여동생이
무슨 일 있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돌아보면 여동생이야말로 나처럼 웃던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어쩌면 내 기억 속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여긴 것들이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자
동생의 무표정함에 대한 미안함도 사그라지고,
점점 세상에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는 세상은,
사진 속 어린아이인 나는,
평화롭기만 하고, 신나기만 했다.
나의 지금 여기도 그처럼 아무 일 없다고 믿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