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새집에 여동생 다녀가다

Shaoli 2019. 4. 24. 16:56

 

새집에 처음으로 누군가 며칠 머물다 갔다.

평소 관리인이나 친구, 설치기사 등이 올 때에도 하임(고양이)이는 낯가리지 않고 궁금한 대로 다가가더니,

동생이 장시간 떠나지 않고 눌러앉자 매우 당황했다.

동생이 쓰는 방을 거실에서 항시 주시하고, 이따금씩 방 앞으로 가서 지키기도 했다.

동생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것이 너무 긴장된 나머지 잠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빵 굽는 자세만 유지했다.

덕분에 나는 한 시간마다 우는 소리에 계속 깨고, 동생은 귀마개 하고 잤지만 방해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3일 지내고 떠난 뒤에야 하임이는 긴장 풀고 처음으로 발 뻗고 잤다.

그러고도 며칠 동안 혹시 그 방에서 동생이 나타날까 봐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동생이 있을 때 나는 옆집 소리가 들려도 신경쓰이지 않았고, 윗집에서 간혹 나는 발꿈치 바닥에 닿는 쿵쿵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좋았다.

그저 여동생과 일으키는 생활소음 속에 있으니 정말 우리만의 공간에 사는 것 같았다.

이 집에서 안락함과 사람 사는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집에 있는 동안 내 살림을 보고 물었던 세 마디가 있다.

"휴지 3겹짜리 없어?" (가장 값싼 휴지를 쓰는데, 그게 2겹짜리였다는 걸 이제 알았다.)

"냉장고가 안 시원한 것 같아." (성능이 나쁜 게 아니라 원래 뭐든 시원하게 먹지 않는다.)

"클렌징오일로 이중세안 안 해?" (최대한 화장품 갯수를 줄여 쓰므로 같은 제품으로 이중세안은 해도 오일을 따로 사지 않는다.)

나는 이게 일상이었지만 동생에겐 불편함이 되어서 괜히 미안해지기도 했다.

엘레베이터를 탈 땐 '닫음' 버튼을 누르지 않자 동생은 왜 가만히 있냐고 물었고

나는 에너지 절약하는 평소 습관대로 늘 버튼 누르는 걸 잊어버렸으며, 그건 동생 몫이었다.

동생이 떠날 땐 두고 가는 물건 없는지 둘러보다가 칫솔과 렌즈통 챙겨 가라고 했다.

그러자 동생은 "그거 일회용 아니야? 버려."라고 했다.

동생이 떠난 뒤엔 빨래건조대에 말린 팬티 2장을 발견하고, 이걸 두고 갔다고 전하니 쿨하게 또 "버려."라고 했다.

물론 나는 버리지 않았다.

 

같이 지내는 게 좋았는데, 동생은 뭘 느끼고 갔을까. 

5개월 아기 보느라 2시간마다 한 번씩 깨 왔던 터라 그런 건지,

동생은 낮에 이부자리에 멍하니 앉아서 "왜 잠이 안 올까?"라고 물었는데,

나는 괜히 내 집의 단조로움이 허전하고 낯설어서 제대로 못 자는 게 아닐까 마음에 걸렸다.

 

동생이 떠나고 며칠간 매우 우울했다.

동생이 사 주고 간 티라미수 컵케익을 먹으면서 마음 달래고,

그 뒤로 가족톡방을 나가고 싶을 만큼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덜 외로울 것 같아서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동생 쓰라고 사 놓은 푹씬한 매트리스는 내 이부자리로 옮겼다.

딱딱한 바닥을 더 좋아하지만 동생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좀 더 따듯하게 자야 할 것 같았다.

좀 더 포근한 자리에 누워야 나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하임이가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