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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1982년 임술(壬戌), 검은 개 해에 검은 개로 해 저무는 밤을 맞는 시간에 태어났다. 사주에 시작과 성장의 기운을 나타내는 목(木)과 타오르는 화(火)가 하나도 없는 수(水) 3, 토(土) 3, 금(金) 2개지만 2개가 토에 숨어 있어 금 4개인 오행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사주냐고 이리 분석하고 저리 분석해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병존 하나 없이 각각 흩어진데다 고루 섞여 있어 땅과 물, 바위가 혼재돼 있으니 우주적 질서를 찾기 전인 카오스 상태가 떠올랐다. 물은 끝과 죽음을 상징하여 검은 색이고, 검은 개는 죽음과 끝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형상이다. 게다가 태어난 시간도 한겨울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경계라니. 힘들 때 어린아이와 예술가의 열정이 보고 싶은 건 나에게 목(木)과 화(火)가 ..
신경증 환자들의 '시험에 대한 공포' 역시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통해 강화된다.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할 때마다, 책임의 압박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졸업 시험이나 박사 학위 구두 시험을 치는 꿈을 꾼다. 졸업 시험 치는 꿈은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꾼다. 시험에 실패한 사람들은 결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따라서 시험 꿈은 심한 불안이 부당한 것으로 증명되었고 결과를 통해 반박되었던 기회를 과거에서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벌써 박사가 되었다는 등 격분해서 꿈에 하는 항의는 사실 꿈이 선사하는 위로다. 내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졸업 시험 전에 네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한번 생각해 봐라, 네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지금 박사이지 않..
아직 다 울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단다. 먹던 것을 채 소화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위 속이 비어 버린 것 같은 이 이상한 기분은 뭘까. 해마다 오는 고난주간과 곧 이어지는 부활이 이렇게 형식적일 수 있을까 싶었다. 난 사실 아직 교회에서 예수의 십자가도 보지 못했고 닫힌 무덤과 열린 빈 무덤도 보지 못했다. 개신교회는 이렇게 고난의 둘레에다 울타리 쳐 놓고, 그 밖에서 저만치 떨어져 고난과 부활의 신비를 구경하게 하는 데 그친다. 누구도 고난에 대한, 부활에 대한 신앙체험이 없는지, 강단에서는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책 펼쳐 보면 볼 수 있는 이야기들만 짧게 선포하고 끝났다. 그 뒤를 채운 건 칸타타 3-4곡이었다. 물론 부활을 아무리 설교해도 신비는 열린 자에게만 들리고 인간적 방법으로 부활을 와닿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