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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위령 성월, 죽음의 길목에서

Shaoli 2019. 11. 13. 06:31

1982년 임술(壬戌), 검은 개 해에 검은 개로 해 저무는 밤을 맞는 시간에 태어났다.

사주에 시작과 성장의 기운을 나타내는 목(木)과 타오르는 화(火)가 하나도 없는

수(水) 3, 토(土) 3, 금(金) 2개지만 2개가 토에 숨어 있어 금 4개인 오행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사주냐고 이리 분석하고 저리 분석해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병존 하나 없이 각각 흩어진데다 고루 섞여 있어 땅과 물, 바위가 혼재돼 있으니 우주적 질서를 찾기 전인 카오스 상태가 떠올랐다.

물은 끝과 죽음을 상징하여 검은 색이고, 검은 개는 죽음과 끝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형상이다.

게다가 태어난 시간도 한겨울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경계라니.

힘들 때 어린아이와 예술가의 열정이 보고 싶은 건 나에게 목(木)과 화(火)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로에 대한 방황 시간을 가지던 중에 결국 찾게 된 그리고 돌아온 자리가 검은 개의 자리였다.

삶의 끝에서, 죽음 같은 시간을 맞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

그게 영성이든 상담이든 나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는 바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만날 수밖에 없는 팔자였다.

발렌티나 기자가 5.18 민주묘지에 가서 무고하게 죽은 이들의 기구한 사연들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 묘지들 끝자리에 내가 봄가을에 잘 입던 남색 긴 치마 차림으로 해맑게 앉아 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게 왜 보였을까 묻는 말에 나는 영혼들을 위로하고 곁에 머물러 주는 게 내 팔자라서 보인 것이라고 했다.

11월은 가톨릭에서 한 해의 마지막 달이고 삶의 끝자리에서 영혼을 위로하는 달이다.

이 위령 성월에 죽음의 길목을 지키는 내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