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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질과 삶의 욕동, 죽음 욕동에 대해

Shaoli 2019. 12. 3. 10:46

오행(목, 화, 토, 금, 수)에서 木은 시작은, 水는 끝을 나타낸다.

나는 임수壬水인데다 임수壬水, 해수亥水가 더 있다.

거기다 시작과 에너지인 木, 火가 하나도 없어서

대략 보면 무토戊土 하나와 술토戌土 둘도 황량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金이 두 개 있는데 고생한다는 신금辛金과 다른 하나는 신금申金이다.

대략 보면 생명보다 죽음에 가까운 사주에 실제 삶도 몸으로나 정신적으로 늘 죽음에 더 가까이 있는 상태였다.

왕성한 에너지로 살던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의 생기는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죽음욕동과 삶의 욕동(욕동 원리)을 보니

내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증상들이 나타난 건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질적으로 죽음욕동이 더 많거나 삶의 욕동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서

아무래도 나는 죽음욕동이 더 많은 기질로 태어난 사람이고 그 부분은 사주와도 잘 들어맞았다.

하지만 삶의 욕동이 더 우위를 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도 결국 죽음욕동에 의해 죽음으로 간다.

죽음욕동이 우위를 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더 먼저 죽음을 향해 가서 실제로 죽거나,

죽지 않으면 그 죽음을 넘어서 삶의 욕동으로 에너지 방향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것 같다.

(나는 그 전환 과정을 신비체험이나 임사체험과 같은 현상이라고 본다.)

물론 기질을 떠나서 삶의 상황과 정신 상태에 따라 누구나 이 과정으로 죽음을 맞고,

다행히 실제로 죽지 않고 지나간다면 삶의 욕동이 우위를 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죽음을 넘어서 올라온 삶의 에너지는 죽음욕동의 힘까지 싸안고 올라가듯

이전보다 더 큰 에너지로 삶을 이끌어 가게 되는 게 내 경험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목적을 자아가 이드를 점진적으로 정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즉 자아의 강화라고 했다.

이드를 완전히 정복할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향하게 하는 이드의 잔혹함에 이끌려도 그 심연에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원 생명을 찾아 우린 다시 살 수 있다고 난 믿는다.

심해로 내려가다 죽을 뻔하기도 하겠지만 언제나 눈 앞을 비춰 주는 빛은 사랑이다.

깊이 들어갔을 때 그 사랑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어둠에 가려지나, 

끝내 생명은 우리를 다시 삶으로 되돌려 줄 것이다.

죽음욕동과 삶의 욕동의 흐름 안에서 우리는 살다가 실제로 완전히 죽거나 죽다가 살아난다. 

그리고 삶의 욕동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해도 죽음을 겪지 않는 삶은 반쪽짜리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욕동(본능)이 삶을, 자아를 진정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마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