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30대일기 (16)
Zoe
16살에 어머니는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관을 땅속에 묻었다. 30살 초반에 친구의 아버지는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셨다. 그리고 37살, 후배의 아버지를 화장하고 유골을 땅속에 묻었다.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있어 본 게 3번째다. 그동안 조문은 빠지지 않고 다 갔는데, 37년 동안 장지까지 간 게 3번뿐이라니 스스로에게 의외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갑작스럽게 맞아서 언제나 그 어마어마한 충격을 아주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방어가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상처 받지 않으려면 죽음을 항상 가까이 두어서 언제 어느 때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죽음이 예고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경우엔 생각보다 그렇게 받아들이기 고통스럽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이번에 보게 되었다. 오히려 고통스럽..
생수 2리터 6개 한 묶음 가운데 가장 저렴한 게 2000원짜리다. 내가 생수를 사 먹은 지도 얼마되지 않는다. 그 전엔 회사에서 물을 떠다 집에 가져가서 마셨다. 500ml 한 병을 담고 가면 저녁부터 아침까지 마실 수 있었고, 그걸로 부족할 때도 있어서 2병 정도 쟁여 놓기도 했다. 매일 꾸준히 500씩 담아 갔지만 물이 부족해서 1리터를 담아 가야 하는 날은 물만 들어 있는 게 아닌 가방에 어깨가 짓눌려 만원 지하철 안에서 낑낑대던 괴로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이 무거운 게 아니라 삶이 고단했던 거겠다. 그때 살던 집은 녹물이 심하게 나와 그 물로 무얼 해 먹을 수 없었다. 밥 해야 하는 날이나 라면을 끓여야 하면 물 500cc는 한번에 다 쓰니 출퇴근길 1시간 거리에 물을 이고 다니는 서울 사람은..
외국 국적포기 승인 난 날이 딱 내 37번째 생일날이었다.37년의 외국인 신분에서 날 놓아 준 게 생일선물이었나,생존을 위해 포기한 국적이어서인지 기쁨보다 착잡함이 더 컸다.국적 포기 허가 증서를 더 보고 있다간 울 것만 같아서 얼른 서류봉투 속에 다시 넣었다.세종로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외국 국적 포기 확인서를 받고 주민센터에 주민등록 신청을 하면 한국인 신분이 된다.나에겐 그게 피난 같은 인생에서 하루 먹을 쌀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생명줄같이 느껴졌다.지난 외국인으로서 이 땅에 사는 불편함은 생활의 불편함에 내재된 수많은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한 장애와 결핍의 불편함이었다. 저녁엔 집에 와서 좋아하는 중국 예술인이 나온 프로그램들을 보았다.이 사람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울게 되는지, 4시간 동안 보면서..
몇 달간 틈 나는 대로 사주를 분석하고 운세를 검증했다. 물론 앱이나 사이트들의 ‘오늘의 운세’는 간단히 띠로 풀어 주거나 조금 더 성의 있는 곳은 천간일주로 풀어 주니 그 풀이들이 나에게 딱 들어맞을 순 없었다. 운세 설명해 주는 영상을 보니 대략 2020 庚子경자년은 庚金과 子水이므로 壬水戌土임술인 나에게 子水가 뿌리 힘이 되어 주어서 새 일 벌리거나 이직하는 등의 강한 움직임과 추진력을 보이지만, 戌土가 남편 또는 직장에 해당하므로 평소에 얌전히 있더니 갑자기 받아 버리니 구설수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은 벌리는 게 삶이라고, 조심할 건 조심하고 하려던 일을 하라는 설명. 그리고 庚金은 나에게 문서, 공부에 해당되니 올해는 공부하는 머리가 잘 돌아갈거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
며칠 전 점심 먹을 때 발렌티나가 내게 물었다. "몇 살까지 살 수 있다고 정할 수 있으면 몇 살로 하고 싶어?" "응? 난 영원히 살고 싶어." 고민도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해서였는지, 숫자를 넘어선 영원이란 단어가 의외여서인지 발렌티나는 잠시 몇 번 말문이 막힌 듯하다가 다시 물었다. "왜 영원히 살고 싶어?" "사는 게 좋으니까."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레지나는 "왜? 난 내일 죽어도 더 살고 싶단 생각 안 할 텐데."라고 했다. 평소에도 늘 하던 말이었다. 요즘 내 주변은 다들 '내일이라도 죽으면 좋겠다'라든가 '자식 큰 것까지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을 가진 40대들이 많은 것 같다. 삶에 긍정적 재미보다 버거운 괴로움이 더 커서겠지만, 다행히 안토니오는 자신도 영원히 살고 싶..
해가 넘어가기 전에 집에 갈 시간이 생겨서 다녀왔다.몇 달 만에 뵌 아버지는 얼굴색이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어쩐지 핏기가 없어 보였다.돌아가는 길에서야 아버지 피부색이 간경화 때문에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듯했다.남동생과 좀 걷다가 헤어졌는데, 나를 잘 보내주려는 모습에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져 웃으면서 눈물을 훔쳤다.이젠 나를 원망하지 않는데다 내 길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고,서른 살 답게 자신을 돌보고 책임 져 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안쓰럽고 기특도 해서.무엇보다 나를 가만히 보며 "제제, 진짜 오랜만에 보네."라는 마주봄의 여유도 가질 줄 알게 돼서.내 상반신보다 더 큰 인형을 줬는데 도무지 버스 타고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아"다음에 네가 데려다 줘."라고 던져 본 말에 "응...
2019년 마지막 회식을 마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들 먼저 보내고 계산하려고 서 있는데, 손님 하나 없으니 한 잔만 더 하고 가라고 사장님이 잡으셔서 하는 수 없이 이 집과 평소에 잘 지내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 왔다. 본의 아닌 2차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 드릴 때가 왔다고 마음 준비하고 있던 순간, TV에서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찍은 다큐 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는 분들이 다 가톨릭 신자라 적당히 경건한 가운데 대화하며 TV에 나름 집중할 수 있었다. 신학교 다닐 때 본 은 당시 성소를 간절히 찾으며 하느님과 연합하고자 하는 마음만 일상을 잡던 때라 몇 번을 보아도 그 침묵에 울고 또 흐뭇해 하던 프랑스 편 카르투시오 수도생활을 담은 다큐다. 그리..
"Jae, 사실 난 한 사람이랑 쭉 같이 살 자신이 없어." Jae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생각은 평생 한 번도 안 해 본 듯 "뭐? ...그럼?"이라고 물었다. "여러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난 그렇게 쭉 같은 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 살다 보면 또 다른 세계에 눈뜰 수 있잖아. 그럼 난 분명 살다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질거야. 그렇다고 남편한테 떠나겠다고 할 수 없고. 전에 담임목사님이 나한테 결혼을 안 하는 거냐고 물으실 때 내가 뭐랬냐면, 나랑 결혼하는 남자가 불쌍하다고 했어." 주변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진작부터 자기 짝을 찾아서 정해진 삶을 함께 이어 가고 있었다. 나는 늘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너무 확고해서, 그 안에 뿌리를 ..
"그 웃음은... 슬퍼서 웃는 웃음이었군요." 정신분석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그 한마디가 슬프게 마음을 울렸다. 슬픔의 구렁에 빠져서 나가고 싶지 않는 나를 현실은 계속 밖으로 잡아 끌었다. 어릴 때 보던 만화 에서 타임머신 타고 원시시대로 돌아가 둘리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났다. 하지만 공룡들에게 시달리던 친구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둘리를 억지로 잡아 끌어서 현실로 돌아가게 했다. 친구들에게 끌려 가면서 엄마를 울부짖는 둘리의 소리가 늘 마음 한켠에 아프게 남았다. 둘리는 친구들 따라 현실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때 그 시절이야말로 둘리가 살아야 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슬픔의 구렁은 그런 곳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마 뒤에 꿨던 꿈이 생각났다. 신세계 본점 앞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