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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982-2019. 외국인으로서의 37년

Shaoli 2020. 2. 19. 14:03

외국 국적포기 승인 난 날이 딱 내 37번째 생일날이었다.

37년의 외국인 신분에서 날 놓아 준 게 생일선물이었나,

생존을 위해 포기한 국적이어서인지 기쁨보다 착잡함이 더 컸다.

국적 포기 허가 증서를 더 보고 있다간 울 것만 같아서 얼른 서류봉투 속에 다시 넣었다.

세종로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외국 국적 포기 확인서를 받고 주민센터에 주민등록 신청을 하면 한국인 신분이 된다.

나에겐 그게 피난 같은 인생에서 하루 먹을 쌀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생명줄같이 느껴졌다.

지난 외국인으로서 이 땅에 사는 불편함은 생활의 불편함에 내재된 수많은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한 장애와 결핍의 불편함이었다.

 

저녁엔 집에 와서 좋아하는 중국 예술인이 나온 프로그램들을 보았다.

이 사람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울게 되는지, 4시간 동안 보면서 언젠가 자수성가하면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는데도 집 없고 친척도 없는 조국에 가고만 싶었다.

가게 되면 한국의 무엇이 그리울까. 함께해 준 고마움은 있어도 지나온 시간이 다 꿈 같아서 그리움은 없을 것 같았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데도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던 어린 시절이 더 행복해서일까.

그럴 때마다 갑자기 한국의 정서가 너무 낯설어서 또다시 나는 이방인이라는 경계에 서게 된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따듯한 어린 시절 집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 예술인을 볼 때마다 우는 이유도 그가 늘 집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타지로 멀리멀리 나와 대성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어도 항상 마음 안에 자신이 나고 자랐던 시골 고향집을 그리워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건 자신이 개척할 삶과 있어야 할 곳이 지금 이곳이기 때문이니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거겠지.

집 떠나 자신의 길을 간다는 건 아이적 환상에서 자기 삶의 현실로 아장아장 발 딛여 나가 마침내 길을 열어 가는 것이다.

 

나의 현실이 여기라면 누구와 이 현실을 살아갈까.

나와 함께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늘 바랐지만 무엇보다 내가 진실이 되어야 현실을 새로이 눈뜨게 될 것이다.

진실이 되어 진실로 사랑하는 것, 이 현실을, 지금을, 여기 있는 사람들을. 그게 나의 삶을 살고 내 길을 가는 것이다.
산다는 건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