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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16살에 어머니는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관을 땅속에 묻었다. 30살 초반에 친구의 아버지는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셨다. 그리고 37살, 후배의 아버지를 화장하고 유골을 땅속에 묻었다.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있어 본 게 3번째다. 그동안 조문은 빠지지 않고 다 갔는데, 37년 동안 장지까지 간 게 3번뿐이라니 스스로에게 의외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갑작스럽게 맞아서 언제나 그 어마어마한 충격을 아주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방어가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상처 받지 않으려면 죽음을 항상 가까이 두어서 언제 어느 때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죽음이 예고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경우엔 생각보다 그렇게 받아들이기 고통스럽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이번에 보게 되었다. 오히려 고통스럽..
12월 8일 새벽 꿈을 꿨다. 꿈에 나는 전에 살던 독바위역 동네에서 연신내 방향으로 내려오는 긴 길목에 있었고, 그 길에서 큰 길이 보일 때쯤 내 오른쪽 뒤에 교회 부서에서 최 연장자 권사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권사님에게 여기에 무슨 일이시냐 물었고, 권사님은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내게 어떻게 가야 하냐고 하시는데, 나는 분명 일단 이곳을 나가서 연신내 큰 길로 가야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권사님 집 방향을 생각해서 "여기 큰 길로 일단 나가야 해요."라며 큰 길을 앞에서 가리켰는데, 내 눈에서 그 큰 길이 하얀 바탕에 펜으로 물결들을 그려 놓은 듯해 보였고, 나는 그걸 건널 수 없는 세상 밖의 강물이 흐르는 것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당황한 나는 "어, 저게 뭐지...
붕괴될 것 같은 불안이 커지면서 분석 회기를 주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다행히 주말 사역을 하고 있어서 돈이 모자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돈 쓰기 넉넉한 형편도 아니라 맘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2회로 늘린 뒤로 훨씬 많은 안정감이 생겼고, 홀로 일주일을 버티지 않고 길어야 4일을 버티면 됐기 때문이다. 화요일에 분석이 끝나면 이틀 뒤가 더 있다는 것에 괜히 어린아이의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도무지 엄마와 함께할 시간을 얻기 힘든 아이가 "엄마가 나를 한 번 더 봐 주기로 했어요."라며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일상에서 느닷없이 오후부터 피곤이 쏟아져 눈 뜨기가 힘들고 집중할 힘이 없었다. 퇴근하면 집에 가서 저녁도 먹지 않고 잠부터 자야겠다고 작정할 정도로 피곤했고, 저녁 8시부터..
(2) 소중한 사람이 죽는 꿈 전형적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일련의 꿈은 소중한 친척, 부모나 형제자매, 자녀 등이 죽는 내용의 꿈이다. 이 꿈은 즉시 두 부류로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꿈속에서 전혀 슬픔을 느끼지 않아 깨어난 후 자신의 무정함에 놀라고 의아해 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죽음을 몹시 비통해 하며 잠자는 동안 격렬하게 울음을 터뜨리는 꿈이다. 첫 번째 부류의 꿈은 제쳐 둘 수 있다. 분석해 보면 그러한 꿈들은 모종의 다른 소원을 은폐하기 위한 사명을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친척의 죽음 앞에서 비통한 감정을 느끼는 꿈들은 다르다. 이것들은 내용이 말하는 것, 즉 관계된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소원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오래전에 지나가 버리고 다른 것들에 뒤덮여 억압된 소원일..
꿈에 어느 산 언덕 중턱에 있었다. 일행은 5명이 더 있었고, 갑자기 1시간 안에 지구를 덮칠 재앙이 일어날 것인데, 2명쯤 들어가는 부직포 재질의 원통 가방에 들어가면 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먼저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구겨 들어가면 5명은 들어갈거라고 했다. 우린 다해서 6명이었고, 모두 서로 아는 지인이었지만 유일하게 지방에서 올라온 나만 아는 한 사람이 있었다. 4명이 구겨 들어가는 걸 보고서 나는 그 사람에게 나는 들어가지 않을 테니 들어가라고 했다. 그때 죽을 것인가 들어갈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위기였음에도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다른 이들이 원하는 살 길을 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가방에 들어간다고 살거란 믿음이 없었기에 들어가지 않고 차라리 밖에서 죽겠다고..
매일매일 시간은 아쉽게 지나가고, 나는 하루하루 나이 들어 간다. 밤마다 피곤에 지쳐서 더 이상 깨 있을 수 없을 때 잠자리에 누우면서 눈도 뜨지 못하는 상태로 아쉽게 하루와 안녕한다. 오늘도 고마워, 내일도 일어나면 잘 살게. 그러고도 잠들기가 아쉬워서 얼마간 정신은 깨 있다. 사실 잠들기가 아쉬워... 잠들기가 아쉬워... 어쩌면 아기들이 의식과 무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할 때, 처음엔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지만, 의식이 자랄수록 잠들었을 때의 무의식 상태가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이어서 잠자기 전에 그렇게 우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고 싶지 않은데 졸리고, 잠들면 혼자인데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본능적으로 그렇게 우는 게 아닐까.어쨌든 나도 요즘 하루의 끝을 놓으며 잠 자..
인간 안에 있는 시스템 중 그가 살 의지가 있는 한 반드시 작동되는 것이 기사회생이다. 모든 신앙체험은 자신이 죽을 것 같을 때, 또는 죽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에서 극에 달했을 때 완전한 어둠에서 완전한 빛으로 전복되는 체험이 일어난다. 개신교인 중에 이러한 체험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 얼굴에서 발하는 빛은 대개 이런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죠?"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언제나 '일단 자기가 죽어야 한다'이다. 꼭 고통을 겪어야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은 항상 여기에 계시고 한결같이 사랑하신다. 다만 우리의 지향과 마음과 눈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 신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