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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린 뒤 나는 퍽 재밌어 하며 선생님에게 “별로 중요한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말 안 했었는데, 제가 여기 올 때마다 선생님 뒤에 어떤 신사 같은 남자가 보였었어요. 3주 정도 보였는데, 키는 보통에 좀 마른 편이었고 얼굴이 긴 편이었어요. 그래서 저 남자는 누구지, 선생님한테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 같은데, 아버지인가? 오빠인가? 생각했어요. 아니면 선생님이 따르는 정신분석가인가? 그런데 공부하면서 프로이트 책에 있는 표지를 보니 프로이트랑도 닮은 것 같더라고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희 할아버지랑도 닮았네요! 그럼 우리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하하하.”라고 말했다. 아마 지금껏 정신분석 받던 시간 중 가장 유쾌하게 웃었던 때 같은데, 선생님은 내게 “지금도 ..
가족 톡방에 중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놀라셨는지 어디 가서 살려는 거냐고 바로 물으셨고, 난 중간 라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더니 중국인인 제부가 중간이라 하면 상해란다. 그제야 왜 산동을 동북지방이라고 하는지 알았다. 여동생은 귀화까지 해 놓고 왜 갑자기 중국에서 살려는 거냐 물었고, 나는 그저 땡깡 부리는 거라고 했다. 도시생활이 너무 지쳤고, 한국말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근 20년 만에 중국 지도를 다시 보며 어릴 때 이미지 없이 머리로만 외웠던 지방들을 확인했다. 사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서쪽에 있었고, 안휘는 산동과 꽤 가까운 편이었다. 남경도 배꼽 쯤에 있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생각보다 동쪽에 있었다. 어린 시절엔 무협시리즈에서 봤던 중국의 자연경관들을 크면 꼭 ..
정신분석 60회기에 처음으로 분노로 비난을 쏟았다. 대상은 분석가가 아니라 수퍼바이저였지만 공격성이 건드려진 건 처음이었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양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멈추고 거울로 입 안을 들여다봤는데, 새끼 바퀴벌레 하나가 왼쪽 어금니 아래 잇몸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목구멍 쪽을 보니 새끼 바퀴벌레 3마리가 더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내 목구멍에 바퀴벌레 알이 있었나?'라고 생각하고 깼다. 며칠 뒤 꿈에서 조선시대 같은 때에 두 노비와 한 아씨가 같은 흰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한 노비는 덜 떨어진, 한 노비는 충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덜 떨어진 노비가 뜬금없이 아씨를 외딴곳으로 납치했다. 충직한 노비가 달려와서 아씨를 구해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