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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난 새끼 바퀴벌레, 아씨를 강간한 두 노비, 인어공주, 푸른수염, 화장하는 엄마 2019.7-8. 본문

정신

꿈에 나타난 새끼 바퀴벌레, 아씨를 강간한 두 노비, 인어공주, 푸른수염, 화장하는 엄마 2019.7-8.

Shaoli 2019. 8. 10. 13:01

 

정신분석 60회기에 처음으로 분노로 비난을 쏟았다.

대상은 분석가가 아니라 수퍼바이저였지만 공격성이 건드려진 건 처음이었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양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멈추고 거울로 입 안을 들여다봤는데,

새끼 바퀴벌레 하나가 왼쪽 어금니 아래 잇몸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목구멍 쪽을 보니 새끼 바퀴벌레 3마리가 더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내 목구멍에 바퀴벌레 알이 있었나?'라고 생각하고 깼다.

 

 

며칠 뒤 꿈에서 조선시대 같은 때에 두 노비와 한 아씨가 같은 흰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한 노비는 덜 떨어진, 한 노비는 충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덜 떨어진 노비가 뜬금없이 아씨를 외딴곳으로 납치했다.

충직한 노비가 달려와서 아씨를 구해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둘이 같이 아씨를 강간했다.

나는 너무 놀라고 혼란스러워 멀찍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그 아씨의 엉덩이가 보이더니 항문에서 뭔가 튀어나오려 하는 기괴한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 보는데 길쭉한 무언가 나오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때 자세히 보니 쭉 뻗은 남근 같았는데 그 기세가 매우 화가 나 보였다.

남근은 분명 살이었지만 아래 작은 고환은 나무로 조각한 것처럼 아직 살아나지 않은 부분으로 보였다.

그리고 깼다.

 

이 꿈은 나를 격노시킨 덜 떨어진 수퍼바이저와 나를 배신했다고 느낀 분석가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 꿈이었다.

 

 


 

격노 뒤에 반전이 일어났다.

감정이 해소된 줄 알았지만 어느 날 아침 내가 격노한 나머지 아무도 모르게 수퍼바이저를 살해했다고 느꼈고 그 다음 대상은 분석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황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아주 아주 큰 외로움이.

수퍼바이저는 내 마음속에서 제거됨으로써 더 이상 나를 격노시키지도 그에 대해 어떤 정서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게 지나간 꿈 같았고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날 밤 공황 상태가 남아 있어서 잠들기 어려웠는데, 문득 푸른수염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배신감과 정서적 고통을 안긴 모든 아내를 다 죽이고 지하실에 매달아 놓았던 푸른수염.

끝내 마지막 아내도 죽이려다 기도하는 시간을 달라고 한 바람에 그 사이에 오빠들이 달려와 푸른수염을 죽였다.

그리고 나는 곧 그 마지막 아내도 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그러자 거기 매달아 있던 푸른수염의 아내들(내 전 이성친구들)이 다 나로 바뀌어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나였다.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정서 장애들, 나에게 무언가 없다는 그 느낌이 죽은 나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누가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지 막막했다.

오빠들은 어디 있는가. 어떻게 푸른수염을 제거해 줄 것인가.

 


 

수업 중에 떠오르는 동화를 <인어공주>라고 했고, 

인어공주가 왕자를 죽이지 않고 바다(마녀)로 돌아가 물거품이 되는 이야기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왕자를 죽이고 바다로 돌아갔다. 다시 목소리를 찾았을까, 자기 집을 찾았을까. 

내 느낌은 영영 육지로 올라가지 않고 깊고 깊은 바다로 은둔해 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인어공주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인어공주는 푸른수염이 되어 버렸다.

 


 

분석에서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든 증오의 대상을 죽였든 애도의 과정이 필요한데,

싫어하던 사람을 죽였다면 축제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점점 붕괴되고 있었다.

주말에 재밌게 영화 3편을 보고 모처럼 노는 시간을 가졌지만(내 나름의 축제였을 것이다) 월요일부터 스멀스멀 상태가 나빠졌다.

감각이 둔해져 가고 또다시 내부세계와 현실세계의 간격/간극이 벌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잠이 쏟아져 오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언제 잠들었는지, 자기 전에 뭘 했는지 기억을 못했다.

그리고 수-목이 되자 점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근무 중에 문득 어머니가 거실에서 화장하고 계시던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생인 나는 거울에 비친 어머니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눈에 아이라인을 그리며 화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보이는데 눈물이 마구 흘러나오고 왜 우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때 나에게 생활 고민도 없었고, 모든 게 평화롭고 어머니는 예쁘고 보기 좋았다는 것만 떠올릴 수 있었다.

 

분석 때 이 얘길 꺼내자마자 나는 또 눈물이 났었는데,

말미에 나는 "그때가 제가 엄마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던 시간이 그리웠거나 애도했던 걸까.

이틀 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이모들이 어머니의 유품들 중 화장품을 나눠 가졌던 게 떠올랐다.

나는 그때 가져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화장품은 얼굴 마주보기 힘든 엄마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나는 그 화장품들을 잃어버린 뒤에 다른 (색조)화장품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밤늦은 귀갓길에 화장품 가게에 들러 중학교 때 엄마에게 선물할 립스틱을 샀을 때 외에 눈여겨보지 않던 색조화장 코너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20년 전에 비해 가격이 확실히 많이 올라 있었다. 그중 할인하고 있는 아이라이너를 두 개 샀다.

화장하는 엄마를 떠나보내고 화장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내 모습을 찾으려던 걸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대상상실이란 단어만 떠올라도 눈물이 나고 가만히 머무르고만 있고 싶은 주말이다.

 

 

-정신분석 60-63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