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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어디서 본 글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사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된 건 분별력 없는 아기였던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세상과 사물에 대한 인식이 깨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필연적 성장 과정이 에덴에서의 쫓겨남으로 표현되고, 이로써 인간은 더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하며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덴동산은 아기였던 때 엄마 품에서 먹고 자고 아무 근심없이 전적인 돌봄을 받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돌봄 속에서 만족도가 높은 아기가 있는 반면 제대로 또는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아기도 있다. 말 못하고 세상을 모르며 오직 자기 세계 안에서 자..
인간 최초의 경험은 합일 상태였고,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분리에 분리를 거쳐 수많은 '대상'들을 인식하게 된다. 이 분리들이 우리로 하여금 '관계'로써 하나되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키는 바탕이 되는데, 그것이 성적으로든 대인관계적으로든 사회관계적으로든 중요하게 추구하는 바가 되며, 개인에 따라 외적 대상들 가운데 찾는가 하면, 외적 대상에게서 돌려 내적 대상들 가운데 찾는 이가 있다. 내적 대상이 아닌 외적 대상만 추구했던 이들의 경험에 대해 내가 그 방향으로 끝을 본 적이 없으므로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러나 경험상 내적 대상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수많은 외부 인식에 대한 부정들을 거쳐 가는 과정에서 자기 심연의 무언가와 가까워질 때쯤이면 영적 신비라 불리는 신비 현상, 엑스터시, 눈물과 ..
중학교 때부터 잡지를 통해 음식에 칼로리가 있다는 걸 알고는, 심각하게 따져 먹진 않아도 대략적으로 음식 조절을 하다 보니 30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살이 심하게 찐 적 없었다. 갑상선 기능 저하로 많이 먹지 않아도 몸이 붓거나 쉽게 살로 갔지만, (더군다나 한 번 찐 살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저하증이 있음에도 겉 보기엔 표준 몸무게를 유지해 왔다. 여기에 20대 초반에 취미를 넘어 특기에 가까울 만큼 높은 강도로 6년간 운동한 덕에 붙은 근육들이 나머지 10년의 몸을 지탱해 주는 데 큰몫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근육은 몸을 받쳐 주지 않았다. 노화에 따라 뱃살, 옆구리살, 허벅지살은 쉽게 찌고, 몸이 아래로 처지는 게 처음엔 그저 나이 들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갈수록 생활 ..
얼마 전 옛날 영화 과 를 보니, 한때의 사랑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행복했다. 종교는 지복을 얻는 길을 열어 주지만 누릴 만큼 누렸던 나에겐 오히려 현실로 돌아가는 다리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해 고생이었다. 현실로 잘 돌아올 수 있으려면 모든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불러주어야 넘어갈 용기가 생기는 것이었다. 더 이상 종교에만 기대지 않는 삶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답은 조용히 말한다. 사랑을 키워 가는 것, 무엇이든, 누구든, 사랑을 넓혀 나가는 것. 그게 무어냐고 또 물으면, 결국엔 기쁨을 함께하고, 슬픔을 함께할 수 있는 이가 되는 것이더라. 세상에 사랑할 이가 얼마나 많고, 사랑할 것들이..
하지만 친구야, 너가 홀로 있을 때 그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단다. 누구도 너를 실망시키지 않고, 누구도 너를 소외시키지 않고, 누구도 너를 아프게 하지 않아. 너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때, 너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고, 너가 더 이상 누군가의 누구가 되지 않을 때,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네 가치가 떨어질 일 없단다. 이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모든 걸 넘어설 능력이 있지. 스스로 자신이 되고 존재하는 것,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해탈에 이르는 것, 이 정신시스템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내장장치란다. 유약한 우리는 누구도 어린 시절의 좌절과 상처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하지만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우리는 살 길로 벗어날 수 있..
재벌3세들이 마약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왜 부족함 없이 살면서 막 나가는 건지 의문을 가졌다. 재벌3세들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들도 아마 적발되지 않았을 뿐 마약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마약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그 경로도 접하기 쉽지 않고 나 같은 사람은 그게 얼마인지도 모른다. 다만 한국이 마약청정국이었던 만큼 마약 한다는 건 소수의 가진 자들이나 그 관계자들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럼 그들이 왜 마약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사회 안에서 희소가치가 있고 삶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려다 접하게 된 동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재밌는 일이 그렇게 없어 마약을 하냐고 묻는 이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삶의 재미는 사회성, 관계성이 인격..
2019년, 지금의 한국 개신교 예장 통합측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이지만, 종교를 넘어서 하느님(여기서 개신교의 하나님만을 뜻하지 않는 의미에서 사전적으로 올바른 표기인 하느님을 쓰겠다.)을 만난 사람으로서 내리게 된 종교의 정의는 '하느님과의 관계 경험을 말하는 하나의 언어'다.하느님은 개신교에만 계시지 않고 가톨릭이나 정교회, 성공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밖, 다른 고등종교뿐 아니라 종교가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계시다는 전제에서, 각 종교는 '하느님',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특정 유일신이 아닌 인류 모두의 보편 '신'과 일어난 경험, 즉 관계에서 표현하고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라는 것이다.예컨대 나는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오래 접했고 그 안의 말씀들을 통해서 나의 인격 신을 만나고 교제했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