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e

재벌3세, 잘나가는 연예인 등은 왜 마약하는가 본문

書簡

재벌3세, 잘나가는 연예인 등은 왜 마약하는가

Shaoli 2019. 4. 5. 05:09


재벌3세들이 마약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왜 부족함 없이 살면서 막 나가는 건지 의문을 가졌다.

재벌3세들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들도 아마 적발되지 않았을 뿐 마약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마약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그 경로도 접하기 쉽지 않고 나 같은 사람은 그게 얼마인지도 모른다.

다만 한국이 마약청정국이었던 만큼 마약 한다는 건 소수의 가진 자들이나 그 관계자들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럼 그들이 왜 마약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사회 안에서 희소가치가 있고 삶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려다 접하게 된 동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재밌는 일이 그렇게 없어 마약을 하냐고 묻는 이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삶의 재미는 사회성, 관계성이 인격과 잘 이루어질 때 건강한 재미를 찾을 수 있지만, 일반 사람, 그러니까 대중으로부터 떨어진 소수 특권 집단들에게는 건강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기반부터 약할 것이라고 본다. 인격 외에 다른 모든 것이 자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의 사회적 소외 상황에서는 양지로 나아가기보다 음지로 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밖에 또 한 가지는 외부 통제력 상실에서 오는 불안과 방황이 이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유아들도 성장기에서 부모가 원하는 대로 다 허용하는 것과 분별 있는 적절한 통제 아래서 자랐을 때의 정서적 안정이 다르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이 생떼를 쓰고 자기 고집을 부리며 울고 불고 부모와 씨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예컨대 그럴 때 부모가 아이를 버텨 주고 견뎌 주었을 때, 아이는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불안과 공격성을 부모라는 세상이 든든히 받쳐 줌으로써 세상이 자신을 감당해 줄 수 있다는 데서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아동기와 청소년기, 성인기에도 도둑질을 하는 등 범죄라고 할 만한 짓을 하기도 한다. 그건 세상에게 자신을 통제해 달라는 무의식적 소망이 반항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3세나 유명 연예인들처럼 누릴 걸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 세상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때론 가장 흔하게는 삶에 돈이 없어서 생기는 제약들, 예로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없고, 갖고 싶은 물건을 보고도 오랫동안 고민하며 정말 필요한가, 정말 갖고 싶은가를 고심 끝에 구입한 것들은 분명 의미가 다르고, 그에 대한 성취의 질도 다르다. 하지만 일상과 살림에서 이런 한계와 가능 사이의 고민을 하고, 자기 삶의 무게를 짊느라 고생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거기서 자신의 가능성을 시도하는 서민들과 대부분 가능해서 무엇이 불가능인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재벌3세들의 삶이 같을까. 모든 것이 그저 태어나자마자 덧씌워진 것들뿐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들은 나면서부터 사회적 무게는 져야 하면서 삶은 방종되고,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인간적 돌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주변으로부터도 이해되고 진정 인간으로서 수용된 경험도 거의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사람들은 부러워하던 중 그들의 탈선을 듣고 당황하고 뭔지 모를 불쾌감과 배신감을 느끼는 게, 아마 자신들이 그렇게 바라던 돈 많은 삶의 어두운 일면을 보게 된 데서 당혹감을 느껴서인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을 보며, 실제 사정이 어떠하든, 인간은 전능한 상태 안에 있는 것이 오히려 불행이라는 걸 느낀다. 전능한 자는 독립한 사람이고, 독립은 고립과 소외를 가져온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전능이란 한계와 맞딱드린다는 전제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전능이라고 한다. 하지만 삶에서 한계로 보이지 않는 한계 속에서 결국 그들은 전능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마약에 손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상호의존이 가능한 삶을 살 때에만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간다. 그들은 상호의존으로 나아갈 수도 없이 마약의존으로 이 자기소외적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함으로써 위로를 얻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뿐 아니라, 비슷한 동기와 이유로 손닿는 한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은가. 

언젠가 전쟁에서 다친 군인들이 병상에서 맞은 약에 마약 성분이 있었지만, 그들이 전쟁 뒤에 가족에게로 돌아갔을 때는 금단 증상 없이 일상을 잘 살아갔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던 것이 ‘사회’와 ‘관계’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였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안타까운 이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발악해도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주는) 수용적 통제를 통해 관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속한 사회에 자신이 보호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얻길 원하지만, 실제 사회는 아직 미성숙한 부모처럼 경직되고 격리된 통제 또는 방종만 할 줄 아는 듯하다. 그리고 아마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의 인류 역사에서도 그럴 것이다. 다만 관계의 물꼬를 틀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서로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다른 이의 소외가 결코 나의 소외를 빗겨가지 않는 걸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