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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생수 2리터 6개 한 묶음 가운데 가장 저렴한 게 2000원짜리다. 내가 생수를 사 먹은 지도 얼마되지 않는다. 그 전엔 회사에서 물을 떠다 집에 가져가서 마셨다. 500ml 한 병을 담고 가면 저녁부터 아침까지 마실 수 있었고, 그걸로 부족할 때도 있어서 2병 정도 쟁여 놓기도 했다. 매일 꾸준히 500씩 담아 갔지만 물이 부족해서 1리터를 담아 가야 하는 날은 물만 들어 있는 게 아닌 가방에 어깨가 짓눌려 만원 지하철 안에서 낑낑대던 괴로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이 무거운 게 아니라 삶이 고단했던 거겠다. 그때 살던 집은 녹물이 심하게 나와 그 물로 무얼 해 먹을 수 없었다. 밥 해야 하는 날이나 라면을 끓여야 하면 물 500cc는 한번에 다 쓰니 출퇴근길 1시간 거리에 물을 이고 다니는 서울 사람은..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예배가 중단된 지 한 달 지났다.처음엔 토요일에 설교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 기쁘면서도 갑자기 비어 버린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좌불안석이었다.할 일은 평소에도 많았기에 설교 준비하지 않는 시간 동안 놀 수 있거나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단지 우선순위를 바꿔 다른 할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일정 변화가 일어난 것뿐이었다. 코로나19로 예배 중단된 3주째가 가장 답답하고 힘들었다.사람들도 불안했는지 단톡방에 이런저런 국제적 음모론이나 현 정부의 무능, 또는 신천지에 관한 동영상 등을 올리다가4주째가 되니 은혜의강 교회 감염 확산건이 터지고, 또 각자 안정되어 간 건지묵상, 기도, 좋은 글, 웃음 주는 영상 등 서로의 안부 근황을 묻고 나누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물론 그렇게 ..
작년 핑크뮬리를 심은 화분에서 내가 심지 않은 잡초가 났다. 봄맞이 꽃들을 좀 사다 심을까 했는데 공짜로 꽃이 났다니 뜻밖의 작은 손님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흙을 가만 놔 두면 나중엔 쑥도 나고 냉이도 나고 민들레도 날까?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서 화분에 앉아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한 철 편히 쉬다 가든 흔들리다 가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될 테니. 올해는 인연 닿는 씨앗을 심어 봐야겠다.
중학교 때부터 잡지를 통해 음식에 칼로리가 있다는 걸 알고는, 심각하게 따져 먹진 않아도 대략적으로 음식 조절을 하다 보니 30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살이 심하게 찐 적 없었다. 갑상선 기능 저하로 많이 먹지 않아도 몸이 붓거나 쉽게 살로 갔지만, (더군다나 한 번 찐 살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저하증이 있음에도 겉 보기엔 표준 몸무게를 유지해 왔다. 여기에 20대 초반에 취미를 넘어 특기에 가까울 만큼 높은 강도로 6년간 운동한 덕에 붙은 근육들이 나머지 10년의 몸을 지탱해 주는 데 큰몫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근육은 몸을 받쳐 주지 않았다. 노화에 따라 뱃살, 옆구리살, 허벅지살은 쉽게 찌고, 몸이 아래로 처지는 게 처음엔 그저 나이 들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갈수록 생활 ..
치과 치료 때문에 생긴 예상치 못한 85만 원 지출이 내겐 너무 큰 좌절로 다가왔는지, 나는 다시 고아가 되어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월급날은 바로 한 주 뒤였지만 내겐 여전히 갚아야 할 빚들이 있었다. 50만 원 빌려준 선교사 오빠는 극구 돈을 받지 않겠다 해서 다음에 노동력으로 빚을 갚겠다고 했다. 130만 원을 주며 반드시 에어컨을 사라는 막내이모의 당부를 두고 한참 고민하다가 80만 안 되는 에어컨을 샀으니 50만 원이 남았다. 여동생이 아버지한테 50만 원을 빌리고 나에게 또 빌려 주었는데, 그 돈을 아버지가 받지 않겠다 해서 50만이 그대로 남았다. 이렇게 150만 이상의 여유가 비상금으로 남아 있으면, 1억 2천 대출도 야금야금 모은 돈으로 중도상환 하면 이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