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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簡

종교는 하나의 언어다

Shaoli 2019. 3. 8. 23:41


2019년, 지금의 한국 개신교 예장 통합측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이지만, 종교를 넘어서 하느님(여기서 개신교의 하나님만을 뜻하지 않는 의미에서 사전적으로 올바른 표기인 하느님을 쓰겠다.)을 만난 사람으로서 내리게 된 종교의 정의는 '하느님과의 관계 경험을 말하는 하나의 언어'다.

하느님은 개신교에만 계시지 않고 가톨릭이나 정교회, 성공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밖, 다른 고등종교뿐 아니라 종교가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계시다는 전제에서, 각 종교는 '하느님',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특정 유일신이 아닌 인류 모두의 보편 '신'과 일어난 경험, 즉 관계에서 표현하고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라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오래 접했고 그 안의 말씀들을 통해서 나의 인격 신을 만나고 교제했기 때문에 말씀 구절 속에 나와 신의 기억과 이야기가 깊이 베어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같은 그리스도교인 안에서 같은 구절은 아니더라도 공통적으로 성경을 통해 신과 접촉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들은 대체로 사랑과 위로, 거듭남과 희망, 자기죽음과 회개 등으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의 경험적 종교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하고 공유하게 된다. 같은 한국말이지만 한국말이 아니라 한국어로 하는 종교 언어인 셈이다.

개념이 아니라 말씀의 본질을 통해 하느님을 잘 알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종교 언어를 자기 것으로 경험적으로 습득하고 하느님과 의사소통이 막힘 없이 이루어지게 될 때, 다른 종교에서 일맥상통한 점들을 쉽게 알아본다. 본질을 안다는 건 역사와 문화 속에서 저자의 의도에 따라 채색되며 여러 첨삭으로 조잡하게 묶인 말씀의 핵심을 알아볼 줄 알고, 거기서 하느님의 본뜻을 읽어 낼 수 있는 분별력을 말한다. 또한 영적으로는 본래 언어가 없었던 신과의 합일 상태로 소리는 없으나 소통이 자연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성경은 더 이상 공부해서 더 알아내야 할 무엇이 아닌 게 되므로 손에서 놓을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종교 언어를 더 깊이 파지 않아도 진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마치 이미 결혼한 관계는 항상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때 뜨거운 연애 중에 주고받았던 연애편지나 긴 전화 통화를 계속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교라는 특정 종교를 넘어서 자기 자신과 신만 남는 본질적 세상이 열리면 복잡한 신학 설명도 필요 없고, 굳어진 교리나 교조 위에서 이어지는 사유와 논변들도 필요 없어진다. 모든 게 단순하고 모든 게 명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세상은 언어가 필요하지 않지만, 함께 살아야 할 주변 인간들과의 소통과 봉사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문제로 부득이 종교라는 언어를 다시 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어떤 문화 사회냐에 따라 먹고 살 수 있다면 종교를 떠나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지내다 보면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주지 않는 것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서 가능한 은혜라도 갚고자 원래 있던 종교에 남아 있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한국교회 같은 상태라면 남아 있는 것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종교학에서는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종교가 생겨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종교들의 정화와 개혁을 위한 헌신이 필요할 때며 또한 세상에 그렇게 하고 있는 이들이 늘 있어 왔다. 그들은 자신이 몸담던 그리스도교를 새로 쓰는 일에 헌신하거나 보편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로 통합 전향하여 종사하는 걸 선택한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그리스도교 경전은 보편적으로 이해하기엔 가벼운 신앙생활로는 소화할 수 없는 문화와 역사, 의식의 괴리가 있는데도 교회들은 너무 경박하게 말씀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종교 중 특히 그리스도교의 모음, 자음을 막 배우기 시작한 이들을 보면 애당초 시작하지 않거나 다른 종교 언어를 배우는 게 좋겠다고 말리고 싶기도 하고, 고등 수준까지 익힌 이들에게는 갈수록 더 울창해지는 숲에 길을 뚫어 주고 싶은 오지랖도 생긴다. 하지만 모두 자기 때에 자기 갈 길 가며 그곳에서 또한 자기 신을 만나는 은총이 있을 것이니 안타까움보다는 소망과 인내를 더 품고 싶다. 다만 신과 함께하는 세상에 눈뜨고 마음껏 행복하기를. 내가 만나는 신을 모두가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