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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있지 않을 고향에 대한 향수

Shaoli 2019. 10. 3. 14:39

 

가족 톡방에 중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놀라셨는지 어디 가서 살려는 거냐고 바로 물으셨고,

난 중간 라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더니 중국인인 제부가 중간이라 하면 상해란다.

그제야 왜 산동을 동북지방이라고 하는지 알았다.

여동생은 귀화까지 해 놓고 왜 갑자기 중국에서 살려는 거냐 물었고,

나는 그저 땡깡 부리는 거라고 했다.

도시생활이 너무 지쳤고, 한국말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근 20년 만에 중국 지도를 다시 보며 어릴 때 이미지 없이 머리로만 외웠던 지방들을 확인했다.

사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서쪽에 있었고, 안휘는 산동과 꽤 가까운 편이었다.

남경도 배꼽 쯤에 있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생각보다 동쪽에 있었다.

어린 시절엔 무협시리즈에서 봤던 중국의 자연경관들을 크면 꼭 가서 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더 이상 중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묻힌 한국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세상 어느 곳으로도 떠나고 싶지 않아 서울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며칠 전 우연히 리위강(李玉刚)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가 돈 벌러 가난한 고향을 떠나 어렵게 바닥 생활을 하던 중,

랴오허(辽河)강을 보니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서 흘러온 강이라는 생각이 들자

"어디서 왔으니 어디로 가는 것"이라며 투신자살했다고 했다.

물론 자살은 실패하고 강 위에 떠서 표류하는데

강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던 어린 거지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구해 내서 한동안 같이 쓰레기 주우며 생활했다.

나는 그의 동북 지방 억양에서 고향의 소리를 듣게 되면서

20년을 묻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바닥에서부터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말과 톤, 분위기, 웃음소리, 표현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인 듯 너무도 친숙하게 들려왔다.

그리움과 행복감과 슬픔이 교차하며 아기가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으며 그가 나온 방송을 몇 편 더 보았다.

나는 산동 방언을 쓰며 자랐는데, 왜 동북지방 말이 그리움의 언어가 되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돌아가고 싶었다.

어린 시절 마음에 품었던 중국이라는 고향에 막연하게 돌아가고 싶었다.

그 넓은 땅의 어딜 밟아야 내가 그리워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몰라도 한국어를 쓰지 않는 곳으로,

내게 익숙한 정서와 문화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신분석 때 이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은 내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와 '죽음'은 같은 의미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최근 난 계속해서 죽고 싶다는 말 대신 다른 표현을 썼었고,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 속뜻은 다 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리위강은 적어도 부모를 위해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오늘날 중국문화를 빛내는 국보급 예술인으로 크게 인정받고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나

내 삶을 돌아보면 부모로부터 마땅한 보호를 받지 못함으로 여기저기 굴러 온 생활이었으니,

내가 맺은 결실이라곤 원한에서 비롯된 정신적 파괴와 실제 삶의 숱한 상처들 외에 다른 것이 없는 듯했다.

내 삶을 오늘까지 이어 준 힘이 신앙의 보화일지언정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앞에선 나에게 신앙체험도 가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소멸해 버려도 이상할게 없는 삶이라는 인지와,

너무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 나의 삶, 모든 이의 삶이라는 인식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중적 분열 사이에서 나는 몸으로 일상을 유랑할 뿐이었다.

 

서구에서 온 그리스도교도, 인도에서 온 불교도, 최근 매장에 즐비한 핼로윈 소품들도,

한국 것이 아니면서 이곳에 성행하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잊게 하는 모든 것이 나를 더 외롭게 했다.

어쩌면 기도 속에서 군대 귀신 들린 거라사의 광인은 나의 자화상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지도신부님에게 광인이 여자였다면 군대와 같은 강한 횡포 세력들에 의해 강간당하는 여인이었을 거라고 했다.

나에게 있어 고향의 원형을 파괴한 모든 문물들이 그러한 폭력이었던 것 같다.

끝내 예수는 광인에게 붙은 군대 귀신들을 돼지 떼에게 쫓아내 주며, 예수를 따르려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라.

너의 고향 집, 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그의 삶과 생명이 가장 순수한 거기에 있기 때문이거나 그의 찢긴 곳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떠나온 자는 돌아가고, 머무른 자는 떠나야 함이 종종 삶이 주는 메시지다.

 

정신분석을 받는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운데다 갈수록 의심에 뒤덮인다.

벌려 놓았으나 수습 불가의 상태 또는 집도 이후에 남은 온몸의 꿰맨 자국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얼마 전 선생님에게 정신분석을 받기 전에 나는 소수에 속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어도 세상에 다른 많은 소수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90퍼센트 이상의 많은 사람에 들지 않는 소수 가운데서도

이 다수와 공감하거나 공유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극소수란 걸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삶에서 뭘 기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누구와도 놀 수 없다는 것, 누구도 나와 같지 않다는 것, 날 공감해 줄 수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내가 외로운 거라고 하셨다.

나는 울었다.

 

이 상태로 언젠가 소멸하게 될 시간들을 맞고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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