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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종교의 경계 너머 자연인으로

Shaoli 2019. 5. 7. 15:57

 

"Jae, 사실 난 한 사람이랑 쭉 같이 살 자신이 없어."

Jae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생각은 평생 한 번도 안 해 본 듯 "뭐? ...그럼?"이라고 물었다.

"여러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난 그렇게 쭉 같은 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
살다 보면 또 다른 세계에 눈뜰 수 있잖아.
그럼 난 분명 살다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질거야.
그렇다고 남편한테 떠나겠다고 할 수 없고.
전에 담임목사님이 나한테 결혼을 안 하는 거냐고 물으실 때 내가 뭐랬냐면,
나랑 결혼하는 남자가 불쌍하다고 했어."

주변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진작부터 자기 짝을 찾아서 정해진 삶을 함께 이어 가고 있었다.
나는 늘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너무 확고해서, 그 안에 뿌리를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신과 쭉 함께 안주할 수 있는 사람을 옆에서 찾을 수 있는 걸까.
대개 목회자 집안이나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환경 안에서 자란 사람끼리 곧잘 만나 결혼했다.

아마 대부분은 한 번 가진 신앙과 선택한 길에서 엇나가지 않을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 궤도에 편승해서 가거나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아서 함께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런 확신은 발목에 족쇄 채우는 일로 느껴졌고
또한 그렇게 내릴 뿌리가 없었다.

누구를 만나도 이방인 같은데, 
그럼에도 그 삶을 함께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삶의 어느 시기에 나는 반드시 방향을 틀고 그 자리를 떠나 왔다.
누구의 말처럼 나는 늘 <나무꾼과 선녀>의 선녀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 또 날아갈 때가 온 것인지
작년부터 계속 종교를 떠나 좀 더 보편적인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일시적인거라 생각하고 마음 잡아 보고자 전도사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되려 남아 있던 종교에 빚진 마음이 사라졌고,
더더욱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어졌다.

주일이 되면 교회 가서 일하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여가를 즐기거나,
가끔 종교인을 만나고 싶을 때 성당이나 절을 찾고,
조용한 곳에 며칠 머물고 싶으면 피정 가는,
인간이 만든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 자유롭게 신성을 만나고, 
특정 종교와 성직에 매이지 않는
모두와 대화하며 모두와 더불어 사는,
문화적 산물들 너머의 자연적 인간인
그저 나 자신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 어디나 사람들은 다 한곳에 자기들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나에게 없는 안정감과 정서적 여유란 게 있었다.

그제야 가만 돌아보니 나에겐 공동체적 집이 없었다.
온 세상이 내 집이라는 믿음은 있어도
친밀한 가족 구성원을 이루는 집이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 결혼 안 하고 살 수는 있어도 공동체 없이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디 한곳 뿌리내리지 않는 내가 어디서 공동체를 찾을 수 있을까.

종교인이기 전에 인간으로 살아가고,
지금 원대로 종교를 떠나 집단이라는 경계들을 넘으면 이런 고민도 사라질까.
거기서 더 넓은 세상이 열릴까.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종교를 떠나면 당장 밥벌이가 줄어든다는 것인데,
이마저도 미련 없이 놓을 수 있으려면 좀 더 고통받아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또 아니면 어느 새 이미 땅에 단단히 뿌리내려서 새로운 모습으로 자란 나를 보게 될까.

문득 세상을 다 끌어 안을 만큼 커다란 나무가 떠오른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신비한 빛을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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