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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슬퍼서 웃는 것이었군요"

Shaoli 2019. 5. 5. 23:21

 

"그 웃음은... 슬퍼서 웃는 웃음이었군요."

정신분석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그 한마디가 슬프게 마음을 울렸다.

 

슬픔의 구렁에 빠져서 나가고 싶지 않는 나를 현실은 계속 밖으로 잡아 끌었다.

어릴 때 보던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서 타임머신 타고 원시시대로 돌아가 둘리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났다.

하지만 공룡들에게 시달리던 친구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둘리를 억지로 잡아 끌어서 현실로 돌아가게 했다.

친구들에게 끌려 가면서 엄마를 울부짖는 둘리의 소리가 늘 마음 한켠에 아프게 남았다.

둘리는 친구들 따라 현실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때 그 시절이야말로 둘리가 살아야 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슬픔의 구렁은 그런 곳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마 뒤에 꿨던 꿈이 생각났다.

신세계 본점 앞에 있던 육교 아래서 돌아가신 엄마를 찾았다.

표정도 없고 말도 없는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가 나를 몰라보더라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게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해도 괜찮았다.

나는 엄마에게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 이상 바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서 사라졌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프로이트가 꿈은 소원 성취라고 했듯 그때 나에게 유일한 소원은 엄마가 살아 계시는 것이었으니,

그보다 절실한 일이 없으면서도 사실 그건 나의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슬픔.

많이 슬펐으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내게 묻지 않았던 지나가 버린 슬픔.

그리고 그리움.

시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뒤에서 사라져 버린 그 구렁은 너무 깊어

삶의 어느 외진 길목을 가다 운 나쁘게 빠져 버리면

난 늘 일상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에 사로잡히고, 사무치는 그리움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억지로 현실을 이어 간다는 건 나를 거의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엄마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둘리처럼,

그러다 타임머신 바이올린 끝에 묶여 미래 친구들에게 끌려 갈 수밖에 없는 그 모습처럼,

나는 그리움 안에 머물러 거기서 죽고만 싶은데,

현실은 나에게 지금으로 돌아오라고 잡아 끌 때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찢겨져 정신이 붕괴되어 버릴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심장이 아팠다.

차라리 내가 둘로 찢겨져 진실한 영혼이 자유를 얻는다면 그건 예술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아니었다.

시간은 슬픔을 기다려 주지 않아 구렁이 나를 내보내게 했고, 서서히 슬픔은 자취를 감춰 갔다.

다시 보니 나는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아쉬움을 달래지 못한 채.

나는 또 슬픔을, 그리움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