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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절대 고독 속에서 만나는 위대한 침묵 - 영성 10년

Shaoli 2019. 12. 21. 23:18

2019년 마지막 회식을 마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들 먼저 보내고 계산하려고 서 있는데,

손님 하나 없으니 한 잔만 더 하고 가라고 사장님이 잡으셔서 하는 수 없이 이 집과 평소에 잘 지내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 왔다.

본의 아닌 2차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 드릴 때가 왔다고 마음 준비하고 있던 순간,

TV에서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찍은 다큐 <세상 끝의 집>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는 분들이 다 가톨릭 신자라 적당히 경건한 가운데 대화하며 TV에 나름 집중할 수 있었다.

신학교 다닐 때 본 <위대한 침묵>은 당시 성소를 간절히 찾으며 하느님과 연합하고자 하는 마음만 일상을 잡던 때라

몇 번을 보아도 그 침묵에 울고 또 흐뭇해 하던 프랑스 편 카르투시오 수도생활을 담은 다큐다.

그리고 이날 방영한 <세상 끝의 집>은 한국 상주에 있는 여러 나라 수도사들 11명의 수도생활을 담은 것이다.

자연과 침묵 속에서 묵묵히 하는 독방 식사, 홀로 하는 청소, 보수, 텃밭 등의 노동들, 그리고 종소리에 하던 일 멈추고 그 자리에서 하는 기도,

허락된 시간에만 할 수 있는 대화, 날마다 모여서 올리는 성무일도...

이제는 이런 생활을 봐도 크게 다가오는 감동이 없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전혀 달랐다.

한때 내가 했던 침묵 수행과 수도생활, 관상과 기도의 느낌들이 다시 살아나면서

절대 고독 속에서 만나던 위대한 침묵이 다시 부드러운 바람처럼 다가와 내 안에서 생명으로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건 정신분석으로 표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초월적 감각이라는 걸 더 분명히 하게 되면서,

(프로이트는 아마 다시 살아나도 납득 못하겠지만) 그 감각 속에 있으면

성애적인 모든 것은 바람에 날리는 겨나 잿더미처럼 온 데 간 데 없이 스러져 없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 상태가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은 아니어도 그 강렬한 감각은 충분히 미련 없이 특정 대상에 대한 집중을 버리고

박애적으로 인류를 위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추게 한다.

아마도 절대 고독 속에서 만인과 만물을 향해 활짝 열게 하는 그 보이지 않는 문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신비체험은 언제나 부지 중 순간에 열리니 말이다.

 

2010년 신학교에서 시작으로 영성 수련한 지 올해로 10년이다.

신과의 열렬한 사랑과 충성을 다했고, 황홀한 합일과 지복 경험, 침묵과 고독 수행 가운데 현존하기, 자기 직면과 부단한 성찰,

그리고 이후의 정신적 붕괴와 0부터 다시 시작한 반본환원 및 입전수수의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지난했어도

결국 인간 알기와 인간과 올바른 관계 맺기를 배우고 터득하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노바와 한 이야기 중, 가톨릭은 사라져도 수도원은 있어야 한다는 건, 

그러한 생활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고, 모든 이를 위한 생활양식도 아니며, 자칫하면 살아 있는 삶이 아닌 죽어 버린 삶이 되기 쉬울지라도,

하느님이 침묵으로 존재하는 고독한 그곳에 헌신하는 사람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7년 전엔 카르투시오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3년 전까지도 수도원에 대한 확신이 서지 못해 세상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길을 택했다.

요즘에야 비로소, 침묵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소수 사람들은 늘 있을 것이고 

하느님은 특별히 그 삶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비움'으로 드러내 사람들을 절대 고독 속으로 이끄신다고 믿게 되었다.

모든 이가 겪을 수밖에 없는 고독의 끝에서 하느님은 반드시 침묵이라는 희망으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우연히 보게 된 <세상 끝의 집> 1부를 보고, 앞으로 40대에 결혼을 할 것이냐, 다른 길을 열 것이냐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일 결혼이 아닌 침묵의 자리로 부르신다면, 그 자리를 열고 지키고 사람들에게 신을 만나도록 돕는 삶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10년이 지나니 이제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나를 보며 다시 청빈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