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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안녕, 2020년 - 나의 37년

Shaoli 2019. 12. 30. 22:21

해가 넘어가기 전에 집에 갈 시간이 생겨서 다녀왔다.

몇 달 만에 뵌 아버지는 얼굴색이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어쩐지 핏기가 없어 보였다.

돌아가는 길에서야 아버지 피부색이 간경화 때문에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듯했다.

남동생과 좀 걷다가 헤어졌는데, 나를 잘 보내주려는 모습에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져 웃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이젠 나를 원망하지 않는데다 내 길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고,

서른 살 답게 자신을 돌보고 책임 져 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안쓰럽고 기특도 해서.

무엇보다 나를 가만히 보며 "제제, 진짜 오랜만에 보네."라는 마주봄의 여유도 가질 줄 알게 돼서.

내 상반신보다 더 큰 인형을 줬는데 도무지 버스 타고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아

"다음에 네가 데려다 줘."라고 던져 본 말에 "응. 그래."라고고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70을 사실까.

전에 면접에 사진으로만 보던 소장님을 실제로 봤을 때, 너무 연로해지셔서 깜짝 놀랐는데,

오늘 아버지를 뵌 왠지 어색한 피부색의 느낌도 그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요양 중이신 신부님, 2-3년간 못 뵌 교수님도 내년에는 봬야 할 텐데...

그분들은 아버지보다 연세가 더 많으시니 나는 또 얼마 남지 않는 세월들을 마주하고 오겠지.

 

동생이 30이 넘은 만큼 나는 곧 40인데,

하루가 다르게 모양이 변해 가는 내 얼굴 보면서도 세월의 무게를 느끼고,

요즘은 지혜와 마음 경영이 매일 매 순간 필요한 나날이었다.

앞으로 2020년은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더 분명하게 질 줄 알아야 할 때니 더 깊고 넓어져야 할 테다.

 

언젠가 신부님이 내게 40살까진 조용히 수련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엔 때가 올 것이라며 말이다.

그 '때'란 40대라는 나이에서 자연스레 주어지고 찾아오는 책임의 때일 것이다.

언제나 호통과 야단 뒤에 내게 설익었다며 안타까워하셨듯 30대의 나는 형태를 갖췄어도 진한 맛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살아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깊음은 시간이 흘러야만 낼 수 있는 것이니...

이제는 그 시간이 다가오고 마음을 더 다잡아야 할 때란 걸 실감한다.

삶은 반 이상이 지나갔고, 앞으로의 날도 장담할 수 없다.

매일매일 자신을 담으면서, 다만 계속 깊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