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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어린 시절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답지 못하게 만든 무겁고도 어두운 일들이.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꺼내 보여 주신 가족 사진 속 나는 그저 유쾌하고 발랄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장난스레 웃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오히려 옆에 있는 여동생이 무슨 일 있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돌아보면 여동생이야말로 나처럼 웃던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어쩌면 내 기억 속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여긴 것들이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자 동생의 무표정함에 대한 미안함도 사그라지고, 점점 세상에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는 세상은, 사진 속 어린아이인 나는, 평화롭기만 하고, 신나기만 했다. 나의 지금 여기도 그처럼..
영성 생활을 한 지 8년이 되고, 그중 엄격한 기도 생활을 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강박적이게 되거나 이것이 영성생활이라고 고착된 인간이 되어 버릴까 봐 이완의 시간을 갖고, 내 안에서 다시금 훈련을 필요로 할 때가 올지 두고 보며 자연적 인간으로 살아 보려고 한 지 15개월 5일이다. 그리고 요즘 주변 환경의 변화와 가중된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기지 못하게 되자 나는 자연스레 다시 기도하게 되었다. 직장의 현실적 제한들,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가, 본의 아닌 경쟁적 상황, 3년 이후를 알 수 없는 미래와 혼자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 등이 복합적으로 한 덩어리로 치고 들어왔을 때 KO당한 것이다. 물론 다른 이에겐 이 문제들이 심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금전적으로도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