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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북)불(남)을 중재하던 혼돈의 죽음, 음양과 태극 - 강헌 본문

사주명리 글

물(북)불(남)을 중재하던 혼돈의 죽음, 음양과 태극 - 강헌

Shaoli 2019. 11. 7. 21:57

혼돈왕이 살아 있을 때는 남쪽(불)과 북쪽(물)의 가운데에서 둘을 중재하는 '혼돈'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불과 물이라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극단적인 요소들이 혼돈왕이라는 중간적인 존재로 인해서 순탄하게 공존했다. 그러나 혼돈왕이 사라지자, 이때부터 남해왕과 북해왕은 처절하게 전선을 맞대고,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른바 음양이라는 개념이 출현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혼돈왕에게) 구멍을 뚫지 않고 그대로 놔뒀으면 되는 것을 더 좋게 한다고 구멍을 한 개씩 뚫는 바람에, 다시 말해, 우주가 이미 부여한 질서를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바람에 혼란과 갈등이 시작됐다는 뜻이 숨어 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을 '정의'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 공간을 제외한 곳은 '부정의'가 되어버린다. 이렇듯 경계를 명확히 하는 시대가 오히려 진정한 혼돈의 순간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주 근원의 시점에서 볼 때 음과 양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혼돈의 상태, 즉 그 자체로 조화로운 상태인 혼돈의 상태야말로 우주의 가장 완벽한 상태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혼돈왕의 시대가 사라지고, 남해왕과 북해왕만 남게 되면서 중간이 사라진 음과 양의 개념이 시작되었다.

음과 양은 우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우주적 요소를 설명하는 첫 출발점이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면서 다른 것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같은 것이다. 

무엇이 음이고 무엇이 양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대립적인 존재라는 것, 하나가 있어야 나머지 하나도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고정된 성 역할로 음양을 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은 '명분'이고 음은 '실리'이며,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어할 수 있지만 굳셈은 부드러움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양은 그 기운이 밖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만 안으로 응축된 음의 기운을 당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태극은 음과 양을 구분하지 않는다. 태극이 가지고 있는 개념의 핵심은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되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된다는 것이다. 

입체적으로, 양은 음으로, 음은 양으로 서로 변화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치고 대립하며 하나로 화합하기도 하고,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기도 한다. 

음양은 우선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 사계절을 음양으로 구분하면, 봄은 목, 여름은 화에 배속되고, 가을은 금, 겨울은 수에 배속된다. 그리고 토는 계절을 매개하는 환절기에 속한다. 

중국, 일본, 한국이 음양오행과 친숙한 것은 세 나라가 모두 북위 30도에서 40도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사계절의 변화가 선명하다.

명리학의 한계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모두 북반구가 기준이라는 것이다. 북반구에 태어난 사람은 출생지가 어디든지 명리학의 체계에 모두 적용이 가능하다. 남반구는 남반구의 리듬에 맞는 판을 다시 짜야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 강헌, <명리, 운명을 읽다>,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