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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통합되지 않은, 편히 쉼, 자기느낌 - 도날드 위니캇, <놀이와 현실> 본문
제2장
꿈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의 중심적인 단어는 "형태 없음"이다.
무엇보다도 형태 없음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희망이 중요하며 그것은 자신의 분석가에 대해 가지는 신뢰로부터 나온다.
제3장
심리치료는 환자와 치료자의 두 놀이의 영역이 겹치는 곳에서 발생한다. 심리치료는 함께 놀이하는 두 사람에 관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놀이가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의 치료자의 작업은 환자를 놀이할 수 없는 상태로부터 놀이할 수 있는 상태로 데려오는 것이다.
각 개인의 어린 시절에 자신의 마술적 통제 바깥에 있는 진실로 외부적인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 세계가 있는데, 처음에 그 세계는 나-아닌 세계로 거절된다는 것이다. 외부의 사물을 통제하기 위해서 그는 어떤 것들을 행해야 하며, 무엇을 행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놀이는 행함이다.
보편적 현상으로서의 놀이가 있고, 그것은 건강에 속한 것이다: 놀이는 성장을 촉진시키며 그러므로 건강한 것이다; 놀이는 집단관계들 속으로 인도하고; 심리치료에서 의사소통의 형태일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정신분석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하여 고도로 전문화된 형태의 놀이를 발전시켜 왔다. 이십 세기의 고도로 세련된 놀이 현상이 정신분석이다.
놀이는 항상 개인적 정신 실재와 현실대상들의 통제 경험 사이의 상호놀이가 지닌 예측 불가능성에 그 특징이 있다. 이것은 믿을 만한 것으로 경험되는 관계, 즉 친밀성에서 생겨나는 마술 그 자체가 지닌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 관계가 믿을 만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엄마의 사랑 또는 그녀의 사랑-증오, 또는 그녀의 대상-관계맺기에 의해서 출발된 것이어야 한다.
본질적인 특징은 놀이가 경험이며, 항상 창조적인 경험이고, 삶의 기본적 형태인 시공의 연속성 안에서의 경험이다.
놀이의 예측 불가능성은 그것이 항상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으로 지각된 것 사이의 이론적 접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치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놀이는 자발적이어야 하며, 순응적이거나 묵종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중간현상으로부터 놀이로, 놀이에서 공동의 놀이로,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문화경험들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발달이 있다.
놀이는 신뢰를 암시하며, 거의 절대의존에 가까운 시기에 아기가 경험하는 아기와 엄마-상 사이에 있는 잠재공간에 속한 것이고, 그것은 아기에게 엄마-상의 적응하는 기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 발생한다.
놀이는 그 자체의 포화점에 도달한다. 이것은 경험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가 있음을 뜻한다.
제4장
놀이에서, 아마 놀이에서만, 아이 또는 성인은 창조적일 수 있게 자유롭다.
환경의 작용이 개인의 인격발달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개인이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과 뗄 수 없이 연결된 사실은 놀이에서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예술가가 자기를 탐색하고 있다면, 거의 틀림없이 그 예술가에게는 일반적인 창조적 삶의 영역 안에 이미 어떤 실패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들어진 창조물은 결코 밑에 깔린 자기느낌의 결핍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가 도우려고 하는 그 사람은 전문적인 환경 안에서 갖는 새로운 경험을 필요로 한다. 이 경험은 통합되지 않은(unintergreated) 상태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비목적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여기에서 통합되지 않은 상태란 마치 갓난아기가 엄마의 품안에 편히 쉬고 있을 때와 같은 아무런 경계함이 없는 자아상태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형태 없음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이 활동하는 환경이 신뢰할 만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점이다. 나는 지금 "편히 쉼"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 요소들을 말하고 있다.
분석가는 환자로 하여금 목적이 있는 곳, 불안이 있는 곳, 또는 강박적인 방어에 기초한 신뢰의 결핍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상할 수 있는 곳에 이르도록 돕고 자유연상 자료의 여러 요소들 사이에 있는 연결을 인지하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화된 의미 없음은 조직화된 혼돈이 혼돈의 부정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하나의 방어다. 그리고 의미 없음이 있는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치료자 때문에 환자는 쉼의 기회가 상실된다. 그 환자는 신뢰감을 무너뜨렸던 환경의 실패로 인하여 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것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다음 일련의 내용들이 차례로 필요할 것이다:
(1) 경험에 기초한 신뢰의 상황 안에서 편히 쉼;
(2) 놀이에서 드러나는 창조적인 신체적, 정신적 활동;
(3) 자기느낌의 기초를 형성시켜 주는 이러한 경험들의 총합
이 경험의 총합 또는 반향은 그 의사소통을 하는 신뢰받는 치료자의 편에서 어느 만큼의 반영이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매우 전문적인 조건들 안에서 개인은 하나로 통합되고 불안에 대한 방어로서가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나 자신이다."로 표현되는 하나의 단위로 존재한다.
출처 : <놀이와 현실>, 도날드 위니캇,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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