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e
여기서 무얼 하는가(다가올 대운을 기다리며) 본문
영성을 공부하던 그때가 그리웠다.
이제는 그렇게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상황도 허락되지 않거니와 나는 또 다른 정신여정을 가고 있고,
아직 도중이라 가끔 아득히 멀어진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잠깐 그리움에 잠길 뿐이다.
무신戊申 대운이 곧 지나가고 정미丁未 대운이 온다.
차가운 사주인 나에게 무신은 아마도 일하고 공부하며 방랑하고 고생길을 떠돌아 다니는 운이었던 것 같다.
무戊가 있어야 범람하는 나를 제방해 주지만 또한 나를 극하니 결국 10년간 나를 가둬 놓고 단련시켜서 어디다 쓰려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미丁未 대운은 나에게 목을 생하는 정화丁火, 그리고 뜨거운 땅인 미토未土니 어떤 10년이 될지 몰라도 분명한 건 전보단 좋을 거라는 것이다.
사실 난 을미乙未년에 크게 앓아 누웠어서 귀도鬼道인 未가 오는 게 맘이 편치만은 않다.
내 일주日柱 지지地支인 술戌이 천문天門이어서 미未와 만나면 정신과 건강의 문제로 운명을 다하거나 힘을 못 쓴다는 풀이가 있다.
우연이든 아니든 딱 들어맞았다. 모처럼 재물운이 있는 해였음에도 돈 벌기는커녕 기운이 다 빠져서 9달간 한의원에 돈 쓴 해였다.
그 와중에도 적은 돈을 벌긴 했지만.
다음 삶이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채로, 운이 오는 대로 기회를 잡아서 지냈더니
아주 없는 형편에서 스스로 먹여 살리며 공부하는 데 필요한 돈까지 벌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지속할 수 없는 건 지금 하는 일들이 내 평생 할 일이 될 수 없어서 늘 불안정한 상태였고,
이제 이런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지 몰라도 대운이 바뀜에 따라 머잖아 마무리할 때가 올 것 같다.
다만 근래 계속 힘을 쓸 수 없는 것이 계미癸未월이어서인지 물이 스며들어 숨쉬기가 힘든 느낌이다.
별 이유 없이 처지고 힘들어서 편히 잠들지도 못한다. 작정하고 두 시간을 걷기도 하지만 늘 걸을 수도 없고.
어찌됐든 꽤 안정된 최근 내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몸이 맘 같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루하루는 흘러가고, 생각보다 많은 일을 처리해 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도, 미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없는 지금인데도 삶에 미련을 갖는 나를 본다.
더 살고 싶고, 사람들을 더 보고 싶고, 이 세상과 더 함께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지구가 깊이 병들었음을 확인하는 지금도,
미래세대의 살 길이 막막하고 내 세대는 얼마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를 지금도,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30-40년 안에 떠나기가 못내 아쉽다.
떠난다고 떠나는 게 아니라는 건 전부터 했던 말이지만,
'삶'에 충실한 지금은 조금 더 이 삶에 머물러 있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음에도 요즘처럼 공부나 사유나 제대로 쉼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닌 좀 더 온전한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싶다.
가슴이 답답하다. 두통도 생겼다.
어딘가에 기대어 쉬고 싶지만, 나에겐 독처하는 무녀巫女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
함께 동역하고 기댈 언덕이 되어 줄 사람과 살아가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물론 이 궁금함도 아마 10년이 지나면 스스로 창창하게 자기 길 걸어 더 이상 양기를 보충해 줄 사람을 찾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고생도 이것으로 끝이라면 물이 몸속에 가득 스민 것 같은 이때도 달게 지내겠다.
이제 곧 봄이 오고 따뜻한 물이 되며 병오丙午 대운을 맞을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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