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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사순시기가 시작된 지 2주일이 지났고 제3주일을 앞두고 있다.강론 편집하다 보니 시기가 벌써 그러한데,이번 사순에 나는 어떤 실천목록도 만들지 않았다.아마 더 이상 내가 실천할 고행거리가 없을 만큼 생활에 사치 부린 일 하나 없고,게으른 적도 없으며, 낭비해서 절제가 필요한 일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사를 앞둔 지금, 넉넉치 않은 형편이라 금전 문제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이 오고, 드디어 이사할 날이 다가오는데,빚더미 때문에 신용등급이 단번에 4등급으로 내려간 걸 보고는 이 모든 선택이 나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올라왔다. 점점 예민해진 나는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일이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상태가 ..
"그리고 참나를 모르는 사람이 지도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요. 제가 참나를 모르는데 지도를 했어요.그러다가 혹시 참나를 만나실 수도 있잖아요?본인의 카르마가 괜찮아서.. 잘못된 지도를 듣고도 혹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하면 스승이 잘못되어 있으면 아니라고 합니다."내가 안 됐는데 네가 됐다고?""네가 된다고? 나도 40년을 해도 안 되는데.." 갑자기 한 달 하더니 "이거 아닌가요?"라고 하면,자기의 체면도 있고 여러가지가 걸린 것이 있어요."아니야." 해버리면 그때부터는 같이 헤매게 됩니다.즉, 제자가 더 뛰어난 상근기더라도 스승이 하근기면 같이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스승이 헤매는 것을 같이 따라가야 해요.이것도 일종의 영적착취인데,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 홍익학당, 잘..
돈 없이 이사 다니며 책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많아서 가능한 책은 중요한 것 빼고 다 팔았다.책장에는 영성, 정신분석, 철학, 성경 관련 책 외에 교양 서적만 남았다.하나하나 싸면서 다시 한번 정말 필요한 책인가, 파는 게 어떨까, 굳이 가져가야 하나 생각했는데,결국 원래 팔려고 내놨던 책들 외엔 다 싸게 되었다. 지금 나와 새 집으로 같이 갈 책들은 크게 칼 융, 정신분석, 켄 윌버, 떼이야르 샤르댕, 매튜 폭스 그리고 중세 신비문헌, 끌레르보 베르나르, 아빌라 데레사, 십자가의 요한, 아시시 프란치스코, 로욜라 이냐시오, 영적지도, 영성신학, 현대 영성가, 번역본 다른 성경, 성경 주석, 렉시오 디비나, 중국철학, 교양 고전이다.다 쉽게 읽을 수 없는 책들이고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많지만, 그중 추천..
2019년, 지금의 한국 개신교 예장 통합측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이지만, 종교를 넘어서 하느님(여기서 개신교의 하나님만을 뜻하지 않는 의미에서 사전적으로 올바른 표기인 하느님을 쓰겠다.)을 만난 사람으로서 내리게 된 종교의 정의는 '하느님과의 관계 경험을 말하는 하나의 언어'다.하느님은 개신교에만 계시지 않고 가톨릭이나 정교회, 성공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밖, 다른 고등종교뿐 아니라 종교가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계시다는 전제에서, 각 종교는 '하느님',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특정 유일신이 아닌 인류 모두의 보편 '신'과 일어난 경험, 즉 관계에서 표현하고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라는 것이다.예컨대 나는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오래 접했고 그 안의 말씀들을 통해서 나의 인격 신을 만나고 교제했기 ..
내가 경험한 불가항력적인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는 잠이다. 일어나는 상황들을 내가 어찌할 수 없고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을 때, 그리고 거기서 불화와 갈등이 계속되기만 할 때 나는 깨어날 수 없는 잠 속으로 삼켜지듯 잠을 잔다. 그건 내 무능력함에 대한 큰 저항일 수도 있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회피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내 의지보다 더 앞서는 이 방어에 대해 고민하자 선생님은 어린아이들도 힘들면 잠을 잔다고 하셨다. 잔다는 건 결국 갓난아기 때나 자궁 속에서 외부세계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던 태아 때로 퇴행하는 상태 같았다. 잠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에 선생님은 용기를 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 한마디에 나는 그제서야 그 전 오랜 잠에서 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