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30)
Zoe
前两个月,我看到周深,李玉刚,孙科三个男人比女人还美。 前几天,我又看到了李玉刚经历二十几年的艰难,他离家行走江湖的故事。 他说,他在唱歌,有客人向他扔了二个瓶子,他被磨练地这时还能微微一笑。 他的故事给了我很大的动力,但是慢慢想想,他能多年离开家乡忍受屈辱去赚钱,都是因为他爱她的母亲,爱他的家人。 而我是丧失母亲之后,一直都与家人不和,尤其是父亲。 在我的人生里没有那么肯定又感人的故事,只有坎坷艰难,甚至得了精神分裂症。 有人问他孤不孤独,他说,“有电影说,谁毁了梅兰芳的孤单,就是毁了梅兰芳。我也习惯享受孤单了。” 我流泪了。 我出生在韩国,虽然我的母语是中国语,但至今忘了很多,作文也很不容易。 只是我看到李玉刚说话之后,就一直沉侵在乡愁中,虽然没去过山东,但我知道我一直很怀念中国,怀念我没去过的故乡。 最近,我不知道该怎么过了。但我听他开讲的时候,感觉我不用再去求什么了,也不用去研..
붕괴될 것 같은 불안이 커지면서 분석 회기를 주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다행히 주말 사역을 하고 있어서 돈이 모자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돈 쓰기 넉넉한 형편도 아니라 맘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2회로 늘린 뒤로 훨씬 많은 안정감이 생겼고, 홀로 일주일을 버티지 않고 길어야 4일을 버티면 됐기 때문이다. 화요일에 분석이 끝나면 이틀 뒤가 더 있다는 것에 괜히 어린아이의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도무지 엄마와 함께할 시간을 얻기 힘든 아이가 "엄마가 나를 한 번 더 봐 주기로 했어요."라며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일상에서 느닷없이 오후부터 피곤이 쏟아져 눈 뜨기가 힘들고 집중할 힘이 없었다. 퇴근하면 집에 가서 저녁도 먹지 않고 잠부터 자야겠다고 작정할 정도로 피곤했고, 저녁 8시부터..
진실과 진실이 만날 때 우린 얼마나 흐뭇하고 기쁠까. 사는 건 그러기 위한 것인데 어서 우리가 함께 춤추는 날이 왔으면.
치과 치료 때문에 생긴 예상치 못한 85만 원 지출이 내겐 너무 큰 좌절로 다가왔는지, 나는 다시 고아가 되어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월급날은 바로 한 주 뒤였지만 내겐 여전히 갚아야 할 빚들이 있었다. 50만 원 빌려준 선교사 오빠는 극구 돈을 받지 않겠다 해서 다음에 노동력으로 빚을 갚겠다고 했다. 130만 원을 주며 반드시 에어컨을 사라는 막내이모의 당부를 두고 한참 고민하다가 80만 안 되는 에어컨을 샀으니 50만 원이 남았다. 여동생이 아버지한테 50만 원을 빌리고 나에게 또 빌려 주었는데, 그 돈을 아버지가 받지 않겠다 해서 50만이 그대로 남았다. 이렇게 150만 이상의 여유가 비상금으로 남아 있으면, 1억 2천 대출도 야금야금 모은 돈으로 중도상환 하면 이자도..
"Jae, 사실 난 한 사람이랑 쭉 같이 살 자신이 없어." Jae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생각은 평생 한 번도 안 해 본 듯 "뭐? ...그럼?"이라고 물었다. "여러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난 그렇게 쭉 같은 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 살다 보면 또 다른 세계에 눈뜰 수 있잖아. 그럼 난 분명 살다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질거야. 그렇다고 남편한테 떠나겠다고 할 수 없고. 전에 담임목사님이 나한테 결혼을 안 하는 거냐고 물으실 때 내가 뭐랬냐면, 나랑 결혼하는 남자가 불쌍하다고 했어." 주변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진작부터 자기 짝을 찾아서 정해진 삶을 함께 이어 가고 있었다. 나는 늘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너무 확고해서, 그 안에 뿌리를 ..
"그 웃음은... 슬퍼서 웃는 웃음이었군요." 정신분석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그 한마디가 슬프게 마음을 울렸다. 슬픔의 구렁에 빠져서 나가고 싶지 않는 나를 현실은 계속 밖으로 잡아 끌었다. 어릴 때 보던 만화 에서 타임머신 타고 원시시대로 돌아가 둘리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났다. 하지만 공룡들에게 시달리던 친구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둘리를 억지로 잡아 끌어서 현실로 돌아가게 했다. 친구들에게 끌려 가면서 엄마를 울부짖는 둘리의 소리가 늘 마음 한켠에 아프게 남았다. 둘리는 친구들 따라 현실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때 그 시절이야말로 둘리가 살아야 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슬픔의 구렁은 그런 곳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마 뒤에 꿨던 꿈이 생각났다. 신세계 본점 앞에 있..
새집에 처음으로 누군가 며칠 머물다 갔다. 평소 관리인이나 친구, 설치기사 등이 올 때에도 하임(고양이)이는 낯가리지 않고 궁금한 대로 다가가더니, 동생이 장시간 떠나지 않고 눌러앉자 매우 당황했다. 동생이 쓰는 방을 거실에서 항시 주시하고, 이따금씩 방 앞으로 가서 지키기도 했다. 동생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것이 너무 긴장된 나머지 잠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빵 굽는 자세만 유지했다. 덕분에 나는 한 시간마다 우는 소리에 계속 깨고, 동생은 귀마개 하고 잤지만 방해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3일 지내고 떠난 뒤에야 하임이는 긴장 풀고 처음으로 발 뻗고 잤다. 그러고도 며칠 동안 혹시 그 방에서 동생이 나타날까 봐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동생이 있을 때 나는 옆집 소리가 들려도 신경쓰이지 않..
어린 시절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답지 못하게 만든 무겁고도 어두운 일들이.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꺼내 보여 주신 가족 사진 속 나는 그저 유쾌하고 발랄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장난스레 웃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오히려 옆에 있는 여동생이 무슨 일 있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돌아보면 여동생이야말로 나처럼 웃던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어쩌면 내 기억 속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여긴 것들이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자 동생의 무표정함에 대한 미안함도 사그라지고, 점점 세상에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는 세상은, 사진 속 어린아이인 나는, 평화롭기만 하고, 신나기만 했다. 나의 지금 여기도 그처럼..
영성 생활을 한 지 8년이 되고, 그중 엄격한 기도 생활을 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강박적이게 되거나 이것이 영성생활이라고 고착된 인간이 되어 버릴까 봐 이완의 시간을 갖고, 내 안에서 다시금 훈련을 필요로 할 때가 올지 두고 보며 자연적 인간으로 살아 보려고 한 지 15개월 5일이다. 그리고 요즘 주변 환경의 변화와 가중된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기지 못하게 되자 나는 자연스레 다시 기도하게 되었다. 직장의 현실적 제한들,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가, 본의 아닌 경쟁적 상황, 3년 이후를 알 수 없는 미래와 혼자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 등이 복합적으로 한 덩어리로 치고 들어왔을 때 KO당한 것이다. 물론 다른 이에겐 이 문제들이 심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금전적으로도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