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30)
Zoe
간간이 들어오는 블로그가 어느 새 10000 앞둔 순간을 포착했다. 네이버에 있을 땐 상대적으로 글을 자주 쓰는 편이었는데, 이곳에 온 뒤로 그닥 잘 쓰지 않는 건 속 풀 곳이 따로 생긴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사실 블로그를 새로 만들 때마다 어떤 주제 하나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였는데, 막상 만들고 나면 또 어느 새 이런저런 주제들이 늘어나 버린다. 내가 하나에만 전념하거나 오롯이 매달리는 성격이 못되서다. 이곳은 버려 둔 계정으로 어쩌다 시작해 놓고, 가만 놔 두는데 싹이 저 혼자 조용히 자라나듯 방문수가 이만큼 누적됐다. 사실 10000이 쉽지, 2만, 3만, 10만 넘어가면 100만 가는 건 어렵고 더디다. 그때 이 블로그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나는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영..
며칠 전 점심 먹을 때 발렌티나가 내게 물었다. "몇 살까지 살 수 있다고 정할 수 있으면 몇 살로 하고 싶어?" "응? 난 영원히 살고 싶어." 고민도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해서였는지, 숫자를 넘어선 영원이란 단어가 의외여서인지 발렌티나는 잠시 몇 번 말문이 막힌 듯하다가 다시 물었다. "왜 영원히 살고 싶어?" "사는 게 좋으니까."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레지나는 "왜? 난 내일 죽어도 더 살고 싶단 생각 안 할 텐데."라고 했다. 평소에도 늘 하던 말이었다. 요즘 내 주변은 다들 '내일이라도 죽으면 좋겠다'라든가 '자식 큰 것까지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을 가진 40대들이 많은 것 같다. 삶에 긍정적 재미보다 버거운 괴로움이 더 커서겠지만, 다행히 안토니오는 자신도 영원히 살고 싶..
해가 넘어가기 전에 집에 갈 시간이 생겨서 다녀왔다.몇 달 만에 뵌 아버지는 얼굴색이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어쩐지 핏기가 없어 보였다.돌아가는 길에서야 아버지 피부색이 간경화 때문에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듯했다.남동생과 좀 걷다가 헤어졌는데, 나를 잘 보내주려는 모습에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져 웃으면서 눈물을 훔쳤다.이젠 나를 원망하지 않는데다 내 길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고,서른 살 답게 자신을 돌보고 책임 져 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안쓰럽고 기특도 해서.무엇보다 나를 가만히 보며 "제제, 진짜 오랜만에 보네."라는 마주봄의 여유도 가질 줄 알게 돼서.내 상반신보다 더 큰 인형을 줬는데 도무지 버스 타고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아"다음에 네가 데려다 줘."라고 던져 본 말에 "응...
2019년 마지막 회식을 마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들 먼저 보내고 계산하려고 서 있는데, 손님 하나 없으니 한 잔만 더 하고 가라고 사장님이 잡으셔서 하는 수 없이 이 집과 평소에 잘 지내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 왔다. 본의 아닌 2차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 드릴 때가 왔다고 마음 준비하고 있던 순간, TV에서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찍은 다큐 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는 분들이 다 가톨릭 신자라 적당히 경건한 가운데 대화하며 TV에 나름 집중할 수 있었다. 신학교 다닐 때 본 은 당시 성소를 간절히 찾으며 하느님과 연합하고자 하는 마음만 일상을 잡던 때라 몇 번을 보아도 그 침묵에 울고 또 흐뭇해 하던 프랑스 편 카르투시오 수도생활을 담은 다큐다. 그리..
12월 8일 새벽 꿈을 꿨다. 꿈에 나는 전에 살던 독바위역 동네에서 연신내 방향으로 내려오는 긴 길목에 있었고, 그 길에서 큰 길이 보일 때쯤 내 오른쪽 뒤에 교회 부서에서 최 연장자 권사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권사님에게 여기에 무슨 일이시냐 물었고, 권사님은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내게 어떻게 가야 하냐고 하시는데, 나는 분명 일단 이곳을 나가서 연신내 큰 길로 가야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권사님 집 방향을 생각해서 "여기 큰 길로 일단 나가야 해요."라며 큰 길을 앞에서 가리켰는데, 내 눈에서 그 큰 길이 하얀 바탕에 펜으로 물결들을 그려 놓은 듯해 보였고, 나는 그걸 건널 수 없는 세상 밖의 강물이 흐르는 것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당황한 나는 "어, 저게 뭐지...
오행(목, 화, 토, 금, 수)에서 木은 시작은, 水는 끝을 나타낸다. 나는 임수壬水인데다 임수壬水, 해수亥水가 더 있다. 거기다 시작과 에너지인 木, 火가 하나도 없어서 대략 보면 무토戊土 하나와 술토戌土 둘도 황량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金이 두 개 있는데 고생한다는 신금辛金과 다른 하나는 신금申金이다. 대략 보면 생명보다 죽음에 가까운 사주에 실제 삶도 몸으로나 정신적으로 늘 죽음에 더 가까이 있는 상태였다. 왕성한 에너지로 살던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의 생기는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죽음욕동과 삶의 욕동(욕동 원리)을 보니 내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증상들이 나타난 건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질적으로 죽음욕동이 더 많거나 삶의 욕동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누군..
1982년 임술(壬戌), 검은 개 해에 검은 개로 해 저무는 밤을 맞는 시간에 태어났다. 사주에 시작과 성장의 기운을 나타내는 목(木)과 타오르는 화(火)가 하나도 없는 수(水) 3, 토(土) 3, 금(金) 2개지만 2개가 토에 숨어 있어 금 4개인 오행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사주냐고 이리 분석하고 저리 분석해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병존 하나 없이 각각 흩어진데다 고루 섞여 있어 땅과 물, 바위가 혼재돼 있으니 우주적 질서를 찾기 전인 카오스 상태가 떠올랐다. 물은 끝과 죽음을 상징하여 검은 색이고, 검은 개는 죽음과 끝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형상이다. 게다가 태어난 시간도 한겨울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경계라니. 힘들 때 어린아이와 예술가의 열정이 보고 싶은 건 나에게 목(木)과 화(火)가 ..
수련을 하든 체험을 하든 그 뒤에는 어떤 욕망 없는 상태가 되어 전반적인 고요와 평정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생이 이어지는 동안 그런 상태가 계속 안정적으로 간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그런 상태가 되어 버리면 이후의 반평생(까지 살 수 있을지 몰라도)은 대개 물 흐르듯이 가도록 놔 두게 된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의식이나 해야 한다는 움직임 없이 흘러가는 대로 가는데, 2015-19년까지 평지를 흘러가듯 지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도 상황이 그러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운세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움직일 수 있는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방향을 틀어 주는 전환점이 되어 주기도 하더라.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아무 생각 없다가, 발렌티나..
가족 톡방에 중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놀라셨는지 어디 가서 살려는 거냐고 바로 물으셨고, 난 중간 라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더니 중국인인 제부가 중간이라 하면 상해란다. 그제야 왜 산동을 동북지방이라고 하는지 알았다. 여동생은 귀화까지 해 놓고 왜 갑자기 중국에서 살려는 거냐 물었고, 나는 그저 땡깡 부리는 거라고 했다. 도시생활이 너무 지쳤고, 한국말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근 20년 만에 중국 지도를 다시 보며 어릴 때 이미지 없이 머리로만 외웠던 지방들을 확인했다. 사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서쪽에 있었고, 안휘는 산동과 꽤 가까운 편이었다. 남경도 배꼽 쯤에 있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생각보다 동쪽에 있었다. 어린 시절엔 무협시리즈에서 봤던 중국의 자연경관들을 크면 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