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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외국 국적포기 승인 난 날이 딱 내 37번째 생일날이었다.37년의 외국인 신분에서 날 놓아 준 게 생일선물이었나,생존을 위해 포기한 국적이어서인지 기쁨보다 착잡함이 더 컸다.국적 포기 허가 증서를 더 보고 있다간 울 것만 같아서 얼른 서류봉투 속에 다시 넣었다.세종로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외국 국적 포기 확인서를 받고 주민센터에 주민등록 신청을 하면 한국인 신분이 된다.나에겐 그게 피난 같은 인생에서 하루 먹을 쌀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생명줄같이 느껴졌다.지난 외국인으로서 이 땅에 사는 불편함은 생활의 불편함에 내재된 수많은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한 장애와 결핍의 불편함이었다. 저녁엔 집에 와서 좋아하는 중국 예술인이 나온 프로그램들을 보았다.이 사람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울게 되는지, 4시간 동안 보면서..
1.2 꿈에 한 저수지에 문제가 생겼는데, 누구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 속을 살펴보려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어떤 여자와 그 소식을 듣고 우리가 저수지 속을 알아보겠다며 잠수할 준비를 마치고 관리자에게 갔는데, 태만하게 유리 너머로 저수지를 내다보고 앉아 있는 관리자를 나무라면서 "우리가 목숨 걸고 들어가겠다잖아요.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에요?"라고 했다. 그 뒤로 22일까지 꾼 꿈들은 난잡하고 길에서 많은 사람이 오가거나, 어두운 빗길을 홀로 하염없이 걷거나, 별 주제도 없는 알 수 없는 꿈들만 꿨다. 1.24 분석가 선생님이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나왔다. 한 길쭉한 수련회 장소 같은 곳(온통 하얀 벽)에서 나는 조원들과 함께 있었고, 시간이 다 되었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안쪽 문을 ..
클라인 학파의 연구가 주는 매력은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경험 형태를 맛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것의 많은 부분이 ‘정신증’ 환자들의 연구에서 온 것이다. 클라인학파 학자들 사이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아래에 여러 마음의 층들이 있다는 진정함 믿음을 공유한다. (유아의 삶의 과정에서 그 최초의 정신 층은 발달의 진행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히스테리, 강박증 등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클라인학파 학자들에게 있어서 정신 과정의 세계는 이런 원시적 수준의 정신 층에 대한 이해를 통해 끊임없이 재정의 되고 있다. .... 원칙적으로 적어도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보다 일반적인 패턴과 성향을 가져서 안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주관적 자료를 통합하는 문..
클라인은 질투(jealousy), 시기심(envy), 탐욕(greed)을 조심스럽게 구분했다. 시기심은 질투보다 더 원초적인 것이다. 시기심은 순전히 파괴적이고, 사랑과 존경의 대상을 겨냥한다. 질투는 오이디푸스적 삼자관계에 속한 좀 더 섬세한 감정으로서 사랑에 근거하고 있으며, 경쟁자에 대한 증오는 욕망의 대상에 대한 사랑으로 작용한다. 질투는 고상한 것일 수도 있고 비열한 것일 수도 있는 반면 시기심은 언제나 비열하다. 탐욕 또한 시기심과 구분되어야 한다. 탐욕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탐욕으로 인한 손상은 의도적인 파괴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시기심의 직접적인 목적은 대상의 속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시기심을 유발하는 속성이 파괴되면 더 이상..
몇 달간 틈 나는 대로 사주를 분석하고 운세를 검증했다. 물론 앱이나 사이트들의 ‘오늘의 운세’는 간단히 띠로 풀어 주거나 조금 더 성의 있는 곳은 천간일주로 풀어 주니 그 풀이들이 나에게 딱 들어맞을 순 없었다. 운세 설명해 주는 영상을 보니 대략 2020 庚子경자년은 庚金과 子水이므로 壬水戌土임술인 나에게 子水가 뿌리 힘이 되어 주어서 새 일 벌리거나 이직하는 등의 강한 움직임과 추진력을 보이지만, 戌土가 남편 또는 직장에 해당하므로 평소에 얌전히 있더니 갑자기 받아 버리니 구설수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은 벌리는 게 삶이라고, 조심할 건 조심하고 하려던 일을 하라는 설명. 그리고 庚金은 나에게 문서, 공부에 해당되니 올해는 공부하는 머리가 잘 돌아갈거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
간간이 들어오는 블로그가 어느 새 10000 앞둔 순간을 포착했다. 네이버에 있을 땐 상대적으로 글을 자주 쓰는 편이었는데, 이곳에 온 뒤로 그닥 잘 쓰지 않는 건 속 풀 곳이 따로 생긴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사실 블로그를 새로 만들 때마다 어떤 주제 하나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였는데, 막상 만들고 나면 또 어느 새 이런저런 주제들이 늘어나 버린다. 내가 하나에만 전념하거나 오롯이 매달리는 성격이 못되서다. 이곳은 버려 둔 계정으로 어쩌다 시작해 놓고, 가만 놔 두는데 싹이 저 혼자 조용히 자라나듯 방문수가 이만큼 누적됐다. 사실 10000이 쉽지, 2만, 3만, 10만 넘어가면 100만 가는 건 어렵고 더디다. 그때 이 블로그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나는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영..
며칠 전 점심 먹을 때 발렌티나가 내게 물었다. "몇 살까지 살 수 있다고 정할 수 있으면 몇 살로 하고 싶어?" "응? 난 영원히 살고 싶어." 고민도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해서였는지, 숫자를 넘어선 영원이란 단어가 의외여서인지 발렌티나는 잠시 몇 번 말문이 막힌 듯하다가 다시 물었다. "왜 영원히 살고 싶어?" "사는 게 좋으니까."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레지나는 "왜? 난 내일 죽어도 더 살고 싶단 생각 안 할 텐데."라고 했다. 평소에도 늘 하던 말이었다. 요즘 내 주변은 다들 '내일이라도 죽으면 좋겠다'라든가 '자식 큰 것까지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을 가진 40대들이 많은 것 같다. 삶에 긍정적 재미보다 버거운 괴로움이 더 커서겠지만, 다행히 안토니오는 자신도 영원히 살고 싶..
해가 넘어가기 전에 집에 갈 시간이 생겨서 다녀왔다.몇 달 만에 뵌 아버지는 얼굴색이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어쩐지 핏기가 없어 보였다.돌아가는 길에서야 아버지 피부색이 간경화 때문에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듯했다.남동생과 좀 걷다가 헤어졌는데, 나를 잘 보내주려는 모습에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져 웃으면서 눈물을 훔쳤다.이젠 나를 원망하지 않는데다 내 길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고,서른 살 답게 자신을 돌보고 책임 져 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안쓰럽고 기특도 해서.무엇보다 나를 가만히 보며 "제제, 진짜 오랜만에 보네."라는 마주봄의 여유도 가질 줄 알게 돼서.내 상반신보다 더 큰 인형을 줬는데 도무지 버스 타고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아"다음에 네가 데려다 줘."라고 던져 본 말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