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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며칠 전 점심 먹을 때 발렌티나가 내게 물었다. "몇 살까지 살 수 있다고 정할 수 있으면 몇 살로 하고 싶어?" "응? 난 영원히 살고 싶어." 고민도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대답해서였는지, 숫자를 넘어선 영원이란 단어가 의외여서인지 발렌티나는 잠시 몇 번 말문이 막힌 듯하다가 다시 물었다. "왜 영원히 살고 싶어?" "사는 게 좋으니까."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레지나는 "왜? 난 내일 죽어도 더 살고 싶단 생각 안 할 텐데."라고 했다. 평소에도 늘 하던 말이었다. 요즘 내 주변은 다들 '내일이라도 죽으면 좋겠다'라든가 '자식 큰 것까지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을 가진 40대들이 많은 것 같다. 삶에 긍정적 재미보다 버거운 괴로움이 더 커서겠지만, 다행히 안토니오는 자신도 영원히 살고 싶..
해가 넘어가기 전에 집에 갈 시간이 생겨서 다녀왔다.몇 달 만에 뵌 아버지는 얼굴색이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어쩐지 핏기가 없어 보였다.돌아가는 길에서야 아버지 피부색이 간경화 때문에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던 듯했다.남동생과 좀 걷다가 헤어졌는데, 나를 잘 보내주려는 모습에 금방 눈시울이 뜨거워져 웃으면서 눈물을 훔쳤다.이젠 나를 원망하지 않는데다 내 길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고,서른 살 답게 자신을 돌보고 책임 져 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게 안쓰럽고 기특도 해서.무엇보다 나를 가만히 보며 "제제, 진짜 오랜만에 보네."라는 마주봄의 여유도 가질 줄 알게 돼서.내 상반신보다 더 큰 인형을 줬는데 도무지 버스 타고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아"다음에 네가 데려다 줘."라고 던져 본 말에 "응...
12.14 공원 안에 있는 공동체가 사는 것 같은 아담한 집 거실 겸 주방에 흰색 긴 테이블이 두 개 있었다. 디저트를 놓고 먹으려고 하는데 테이블이 너무 길어 휑하니 자리 배치를 다시 하는 게 좋겠다 생각하고 바꿨는데, 바꿔서 보니 어이없게도 구조는 안 바뀌고 힘들게 위치만 조금 이동한 꼴이 되었다. 당황하고 커다란 창밖을 보니 두 개 작은 집 모형과 마주하고 있었고, 사이에 산책길이 있어 연인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모형 집에는 연인들이 안에서 창밖을 보며 놀고 있었고, 나와 마주보게 되니 저 창문을 가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테이블을 다시 옮겨 두 개를 나란히 붙였다. 그제야 내가 쓰기 좋게 된 것 같아 창문을 등지고 디저트를 먹었다. 이 꿈을 아침에 꾸고, 오후에 '원폭에서 살아남은 나뭇가지' ..
2019년 마지막 회식을 마치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들 먼저 보내고 계산하려고 서 있는데, 손님 하나 없으니 한 잔만 더 하고 가라고 사장님이 잡으셔서 하는 수 없이 이 집과 평소에 잘 지내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 왔다. 본의 아닌 2차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 드릴 때가 왔다고 마음 준비하고 있던 순간, TV에서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찍은 다큐 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는 분들이 다 가톨릭 신자라 적당히 경건한 가운데 대화하며 TV에 나름 집중할 수 있었다. 신학교 다닐 때 본 은 당시 성소를 간절히 찾으며 하느님과 연합하고자 하는 마음만 일상을 잡던 때라 몇 번을 보아도 그 침묵에 울고 또 흐뭇해 하던 프랑스 편 카르투시오 수도생활을 담은 다큐다. 그리..
종강하고 처음 맞는 한가한 토요일이었다. 온종일 잔 것도 모자라 오후에 또 잤다. 꿈에서 내내 수업이 이어졌고 장소는 명동성당 맞은편에 있는 빕스 건물이었다. 쉬는 시간에 갑자기 뭐가 떠올라 명동성당 앞에 있는 정자(실제로는 정자가 없다)에 가서 무언가를 확인하러 갔다. 그런데 저녁에다 그곳이 너무 어둡고 노숙인 같은 분 몇이 쉬고 있어 가기를 그만두고 돌아왔다. 이어진 수업에 교수님은 내게 동영상이 보이는 아이패드 만한 상자를 주어서 봤더니 그 안에 내 중고교 여자 동창 둘이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둘이 만나 어디론가 가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이들을 보고 교수님에게 "얘네 둘이 제 동창이에요."라고 했다. 그 둘 중 하나는 누군지 잘 모르지만 하나는 내가 좋아하던 남학생과 사귀다가 맞아서 크게 다친 ..
12월 8일 새벽 꿈을 꿨다. 꿈에 나는 전에 살던 독바위역 동네에서 연신내 방향으로 내려오는 긴 길목에 있었고, 그 길에서 큰 길이 보일 때쯤 내 오른쪽 뒤에 교회 부서에서 최 연장자 권사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권사님에게 여기에 무슨 일이시냐 물었고, 권사님은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내게 어떻게 가야 하냐고 하시는데, 나는 분명 일단 이곳을 나가서 연신내 큰 길로 가야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권사님 집 방향을 생각해서 "여기 큰 길로 일단 나가야 해요."라며 큰 길을 앞에서 가리켰는데, 내 눈에서 그 큰 길이 하얀 바탕에 펜으로 물결들을 그려 놓은 듯해 보였고, 나는 그걸 건널 수 없는 세상 밖의 강물이 흐르는 것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당황한 나는 "어, 저게 뭐지...
정신분석 받다 죽다 살아난 뒤에 꾼 꿈들 2019.11.19 李玉刚이 대낮에 내 집에 서 있었고, 내 남자친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 꿈. 다소 당황했지만 "뭐 필요해? 뭐 먹을래?"라고 물었고, 그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2019.11.20 밤에 잠들기 전에 어쩌다 본 남동생 사진이 어머니 젊은 시절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닮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울면서 잠듬. 2019.11.21 (프로이트의 '쾌락원칙을 넘어서'를 읽고 비로소 소통 가능해짐을 느끼고 기쁘게 잠듬) 언젠가 내가 죽였던 이 교수와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대면했다.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고, 말을 하다가 수업 중에 맘 상하게 한 데 미안하다고 해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깼고, 대답을 해야 속 시원할 것 같아 다시 자고는 ..
오행(목, 화, 토, 금, 수)에서 木은 시작은, 水는 끝을 나타낸다. 나는 임수壬水인데다 임수壬水, 해수亥水가 더 있다. 거기다 시작과 에너지인 木, 火가 하나도 없어서 대략 보면 무토戊土 하나와 술토戌土 둘도 황량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金이 두 개 있는데 고생한다는 신금辛金과 다른 하나는 신금申金이다. 대략 보면 생명보다 죽음에 가까운 사주에 실제 삶도 몸으로나 정신적으로 늘 죽음에 더 가까이 있는 상태였다. 왕성한 에너지로 살던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의 생기는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죽음욕동과 삶의 욕동(욕동 원리)을 보니 내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증상들이 나타난 건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질적으로 죽음욕동이 더 많거나 삶의 욕동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누군..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잘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잘 맞기 때문이며 옳고 그름을 잊는 것은 마음이 잘 맞기 때문이다(忘足履之適也, 忘要帶之適也, 忘是非心之適也,) -《장자(莊子)》〈달생(達生)〉편- 나이가 들수록 점점 편안해지고 싶어진다. 이전에도 그다지 치열하거나 전투적으로 삶을 산 적이 없으면서도 염치없게 편안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편안할까? 게으름을 피워 보았다. 그런데 게으름이 주는 편안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직무유기나 불성실을 명분으로 한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육체적인 편안함 역시 익숙해지자 무뎌지게 되었다. 안일한 일상은 다시 번뇌와 망상으로 복잡하게 얼크러졌다. 나는 편안하고 싶지만 어떤 것이 편안한 것인지..
1982년 임술(壬戌), 검은 개 해에 검은 개로 해 저무는 밤을 맞는 시간에 태어났다. 사주에 시작과 성장의 기운을 나타내는 목(木)과 타오르는 화(火)가 하나도 없는 수(水) 3, 토(土) 3, 금(金) 2개지만 2개가 토에 숨어 있어 금 4개인 오행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사주냐고 이리 분석하고 저리 분석해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다. 병존 하나 없이 각각 흩어진데다 고루 섞여 있어 땅과 물, 바위가 혼재돼 있으니 우주적 질서를 찾기 전인 카오스 상태가 떠올랐다. 물은 끝과 죽음을 상징하여 검은 색이고, 검은 개는 죽음과 끝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형상이다. 게다가 태어난 시간도 한겨울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경계라니. 힘들 때 어린아이와 예술가의 열정이 보고 싶은 건 나에게 목(木)과 화(火)가 ..
수련을 하든 체험을 하든 그 뒤에는 어떤 욕망 없는 상태가 되어 전반적인 고요와 평정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생이 이어지는 동안 그런 상태가 계속 안정적으로 간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그런 상태가 되어 버리면 이후의 반평생(까지 살 수 있을지 몰라도)은 대개 물 흐르듯이 가도록 놔 두게 된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의식이나 해야 한다는 움직임 없이 흘러가는 대로 가는데, 2015-19년까지 평지를 흘러가듯 지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도 상황이 그러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운세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움직일 수 있는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방향을 틀어 주는 전환점이 되어 주기도 하더라.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아무 생각 없다가, 발렌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