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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e
"Jae, 사실 난 한 사람이랑 쭉 같이 살 자신이 없어." Jae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생각은 평생 한 번도 안 해 본 듯 "뭐? ...그럼?"이라고 물었다. "여러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난 그렇게 쭉 같은 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 살다 보면 또 다른 세계에 눈뜰 수 있잖아. 그럼 난 분명 살다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질거야. 그렇다고 남편한테 떠나겠다고 할 수 없고. 전에 담임목사님이 나한테 결혼을 안 하는 거냐고 물으실 때 내가 뭐랬냐면, 나랑 결혼하는 남자가 불쌍하다고 했어." 주변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진작부터 자기 짝을 찾아서 정해진 삶을 함께 이어 가고 있었다. 나는 늘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너무 확고해서, 그 안에 뿌리를 ..
"그 웃음은... 슬퍼서 웃는 웃음이었군요." 정신분석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그 한마디가 슬프게 마음을 울렸다. 슬픔의 구렁에 빠져서 나가고 싶지 않는 나를 현실은 계속 밖으로 잡아 끌었다. 어릴 때 보던 만화 에서 타임머신 타고 원시시대로 돌아가 둘리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났다. 하지만 공룡들에게 시달리던 친구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둘리를 억지로 잡아 끌어서 현실로 돌아가게 했다. 친구들에게 끌려 가면서 엄마를 울부짖는 둘리의 소리가 늘 마음 한켠에 아프게 남았다. 둘리는 친구들 따라 현실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때 그 시절이야말로 둘리가 살아야 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슬픔의 구렁은 그런 곳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마 뒤에 꿨던 꿈이 생각났다. 신세계 본점 앞에 있..
雪落下的声音 作词: 于正(작사 : 위정) 作曲: 陆虎(작곡 : 루후) 轻轻,落在我掌心, qīng qīng,luò zài wǒ zhǎng xīn, 가볍게, 내 손바닥에 떨어지네. 静静,在掌中结冰。 jìng jìng,zài zhǎng zhōng jié bīng。 조용히, 손바닥 안에서 얼음이 되네. 相逢,是前世注定, xiāng féng,shì qián shì zhù dìng, 만남은, 전생에 정해진 것, 痛并,把快乐尝尽。 tòng bìng,bǎ kuài lè cháng jìn。 아프니, 즐거움을 다 맛보아요. 明明,话那么寒心, míng míng,huà nà me hán xīn, 분명, 그렇게 낙심하게 말해 놓고, 假装,那只是叮咛。 jiǎ zhuāng,nà zhǐ shì dīng níng。 아닌 척, 당부일 ..
하지만 친구야, 너가 홀로 있을 때 그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단다. 누구도 너를 실망시키지 않고, 누구도 너를 소외시키지 않고, 누구도 너를 아프게 하지 않아. 너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때, 너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고, 너가 더 이상 누군가의 누구가 되지 않을 때,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네 가치가 떨어질 일 없단다. 이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모든 걸 넘어설 능력이 있지. 스스로 자신이 되고 존재하는 것,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해탈에 이르는 것, 이 정신시스템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내장장치란다. 유약한 우리는 누구도 어린 시절의 좌절과 상처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하지만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우리는 살 길로 벗어날 수 있..
새집에 처음으로 누군가 며칠 머물다 갔다. 평소 관리인이나 친구, 설치기사 등이 올 때에도 하임(고양이)이는 낯가리지 않고 궁금한 대로 다가가더니, 동생이 장시간 떠나지 않고 눌러앉자 매우 당황했다. 동생이 쓰는 방을 거실에서 항시 주시하고, 이따금씩 방 앞으로 가서 지키기도 했다. 동생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것이 너무 긴장된 나머지 잠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빵 굽는 자세만 유지했다. 덕분에 나는 한 시간마다 우는 소리에 계속 깨고, 동생은 귀마개 하고 잤지만 방해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3일 지내고 떠난 뒤에야 하임이는 긴장 풀고 처음으로 발 뻗고 잤다. 그러고도 며칠 동안 혹시 그 방에서 동생이 나타날까 봐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동생이 있을 때 나는 옆집 소리가 들려도 신경쓰이지 않..
아직 다 울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단다. 먹던 것을 채 소화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위 속이 비어 버린 것 같은 이 이상한 기분은 뭘까. 해마다 오는 고난주간과 곧 이어지는 부활이 이렇게 형식적일 수 있을까 싶었다. 난 사실 아직 교회에서 예수의 십자가도 보지 못했고 닫힌 무덤과 열린 빈 무덤도 보지 못했다. 개신교회는 이렇게 고난의 둘레에다 울타리 쳐 놓고, 그 밖에서 저만치 떨어져 고난과 부활의 신비를 구경하게 하는 데 그친다. 누구도 고난에 대한, 부활에 대한 신앙체험이 없는지, 강단에서는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책 펼쳐 보면 볼 수 있는 이야기들만 짧게 선포하고 끝났다. 그 뒤를 채운 건 칸타타 3-4곡이었다. 물론 부활을 아무리 설교해도 신비는 열린 자에게만 들리고 인간적 방법으로 부활을 와닿게..
매일매일 시간은 아쉽게 지나가고, 나는 하루하루 나이 들어 간다. 밤마다 피곤에 지쳐서 더 이상 깨 있을 수 없을 때 잠자리에 누우면서 눈도 뜨지 못하는 상태로 아쉽게 하루와 안녕한다. 오늘도 고마워, 내일도 일어나면 잘 살게. 그러고도 잠들기가 아쉬워서 얼마간 정신은 깨 있다. 사실 잠들기가 아쉬워... 잠들기가 아쉬워... 어쩌면 아기들이 의식과 무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할 때, 처음엔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지만, 의식이 자랄수록 잠들었을 때의 무의식 상태가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이어서 잠자기 전에 그렇게 우는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고 싶지 않은데 졸리고, 잠들면 혼자인데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본능적으로 그렇게 우는 게 아닐까.어쨌든 나도 요즘 하루의 끝을 놓으며 잠 자..
어린 시절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답지 못하게 만든 무겁고도 어두운 일들이.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꺼내 보여 주신 가족 사진 속 나는 그저 유쾌하고 발랄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장난스레 웃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오히려 옆에 있는 여동생이 무슨 일 있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돌아보면 여동생이야말로 나처럼 웃던 적이 없는 아이였다. 어쩌면 내 기억 속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여긴 것들이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자 동생의 무표정함에 대한 미안함도 사그라지고, 점점 세상에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는 세상은, 사진 속 어린아이인 나는, 평화롭기만 하고, 신나기만 했다. 나의 지금 여기도 그처럼..
영성 생활을 한 지 8년이 되고, 그중 엄격한 기도 생활을 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강박적이게 되거나 이것이 영성생활이라고 고착된 인간이 되어 버릴까 봐 이완의 시간을 갖고, 내 안에서 다시금 훈련을 필요로 할 때가 올지 두고 보며 자연적 인간으로 살아 보려고 한 지 15개월 5일이다. 그리고 요즘 주변 환경의 변화와 가중된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기지 못하게 되자 나는 자연스레 다시 기도하게 되었다. 직장의 현실적 제한들,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가, 본의 아닌 경쟁적 상황, 3년 이후를 알 수 없는 미래와 혼자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 등이 복합적으로 한 덩어리로 치고 들어왔을 때 KO당한 것이다. 물론 다른 이에겐 이 문제들이 심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금전적으로도 자유..

사랑한다는 말보다, 날 기뻐해 주세요. 아기를 흐뭇하게 바라볼 때 자기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듯 그렇게 사랑 때문에 기뻐해 주세요. 기쁨으로 웃어 주세요. 그럼 나도 기쁘게 웃을 거에요. 그때 우린 더 행복해질 거에요.

홍콩 팟캐스트 '경열독'(輕閱讀, 가볍게 읽다)에서 들은 임청하의 책 이야기다. 환갑을 맞은 임청하가 2014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雲去雲來)를 냈다. 그리고 일부는 직접 녹음했다. 이 방송에서는 그녀가 등려군과 장국영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주제로 다뤘고, 임청하가 등려군을 만났던 이야기, 이후에 등려군이 죽은 소식을 듣고선 둘 사이의 우정이 이렇게 끝날 수 없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임청하는 등려군이 죽은 뒤엔 꿈에서 자주 등려군을 만났다고 했다. 등려군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고, 단지 이상한 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등려군이 하늘나라에 갔다고 여겼지만, 자신만이 등려군이 아직 세상에 있다는 걸 알았단다. 「奇妙的是,在夢裡,世人都以為她去了天國,唯獨我知道,她還在人間。」 잠깐의..

인간 안에 있는 시스템 중 그가 살 의지가 있는 한 반드시 작동되는 것이 기사회생이다. 모든 신앙체험은 자신이 죽을 것 같을 때, 또는 죽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에서 극에 달했을 때 완전한 어둠에서 완전한 빛으로 전복되는 체험이 일어난다. 개신교인 중에 이러한 체험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 얼굴에서 발하는 빛은 대개 이런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죠?"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언제나 '일단 자기가 죽어야 한다'이다. 꼭 고통을 겪어야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은 항상 여기에 계시고 한결같이 사랑하신다. 다만 우리의 지향과 마음과 눈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 신앙체..